“그대, 대연국의 시조인 홍조 화란의 전설을 알고 있나? 대연국의 창세 신화 원전(原典)에 의하면, 화란은 그녀가 사랑한 인간의 사내를 태워죽게 한 비련의 신수였지. 율족은 화란과 그녀의 연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이라지. 덕택에 율족의 아이들은 모두 불꽃처럼 살 운명을 타고 났다 하더군. 저를 불태워 짧고 강하게 빛났다가, 덧없이 스러져가는 불꽃 말이야.”
붉은 것은 쉽사리 다른 빛깔과 섞이지도, 융화되지도 않는다. 같은 율족끼리라면 수월히 엮어져 결실을 맺기에 화연(花聯)이라 하나, 율족의 피를 지닌 자가 타국의 사람과 연을 맺게 되면 홍연(紅聯)이라 한다 하였다. 사내라면 마음 준 이에게 집착하여 일생토록 한 여인만을 품을 것이요, 여인이라면 저가 나고 자란 붉은 대지마저 배반할 것이라고. 그래서 율족들에게는 타국의 이성과 연분 맺지 말라는 소리마저 있는 것이다. 붉은 것이 잇닿으며 이어지는 인연. 홍조 화란처럼, 불꽃처럼 저를 태우고도 모자라 그 연인마저 집어삼킬 운명이기에.
홍조 화란의 피를 이어받았다 전해지는 율족의 왕, 단제(斷帝) 이지천운. 유리꽃처럼 단아한 미모를 지닌 예도국의 1왕녀, 청조 공주 선우연. 우연찮게 예도국 도성 밖 거리에서 만나진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한 명은 황량한 사막의 바람처럼 공허한 상처를 지닌 사내, 다른 한 명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아픈 멍울을 품고 있는 여인. 연은 북양국 세자 진무혁과 혼인을 앞둔 참이었으나, 천운이 예도국 승전의 예물로 그녀를 요구하면서 그들의 인연은 걷잡을 수 없는 불꽃 속으로 휘말려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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