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이래요? 여긴 무대라고요!”
여자가 관객들을 의식하며 이를 악물고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남자의 한쪽 입술 끝이 가늘게 휘어졌다.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굶주린 맹수의 서늘한 미소와도 같았다. 그렇게 여자를 빤히 응시하던 남자가 굳게 다물었던 입을 드디어 열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묻나?”
스산한 눈빛만큼이나 지독히도 낮고 조용한 어조였다.
“네?”
여자는 남자의 말에 더욱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남의 무대에 불쑥 올라와선 대뜸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뭐 뀐 놈이 성낸다더니 지금이 딱 그렇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기가 찰 노릇이었다.
“지금 무슨 말을…….”
남자의 예리한 눈빛이 얼굴을 꿰뚫을 것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자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결국 그녀는 위압적인 기세에 눌려 할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결혼까지 약속해 놓고, 설마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네에? 겨…… 결혼이요?”
여자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결혼이라니,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놀란 나머지 가슴이 세차게 부딪친 것처럼 숨이 턱 하고 막혀 버렸다.
‘뭐? 결혼? 이 사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분명 한국말이긴 한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자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녀의 놀란 눈동자가 남자를 빤히 응시했다. 높은 하이힐을 신었는데도 목을 빼고 올려다볼 정도로 큰 키였다. 게다가 격식을 갖춘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짙은 회색빛 슈트에 오닉스 커프스버튼이 얼핏 보아도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자신감 넘치는 매서운 눈매와 정확한 각도의 강인한 턱선, 거기다 고집스런 입매까지, 생김새 또한 그려 놓은 듯 반듯했다. 한눈에 보아도 빈틈없는 이목구비에 풍기는 이미지가 강렬한 남자였다.
“저기,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제가 좀 알아듣게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여자가 좀 전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매서운 눈빛만을 번뜩일 뿐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그의 시선이 이번엔 그녀의 목선을 찬찬히 훑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이런 곳에 숨어 있으면 모를 줄 알았나?”
남자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무대 위를 울렸다. 그러자 조용하던 관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 사람이 점점.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좀 알아듣게 얘기할 수 없어요?”
여자의 입에서도 급기야 감정을 실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중요한 공연이니만큼 되도록이면 조용히 처리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드디어 감정이 폭발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넘게 내 귀에 속삭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를 배신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뭐, 뭐라고요? 배…… 배신?”
남자의 의미 있는 말에 여자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손가락을 가리켜 남자에게 몸짓으로 되물었다.
‘내가요?’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 그건 강한 긍정이란 뜻이기도 했다.
‘이거 사람 환장하겠네! 하루아침에 날벼락이라고, 이 사람 대체 뭐야?’
여자는 난감한 얼굴로 눈살을 확 찌푸렸다. 짙은 무대 화장을 한 얼굴이 끓어오르는 열기로 화르르 붉어졌다.
‘이것 참! 갈수록 태산이네.’
여자의 얼굴이 한쪽으로 크게 일그러졌다. 결혼에 배신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닌가.
“저기요…… 헉!”
무언가 말을 하려던 여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남자가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그대로 끌어당겨 안았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반사적으로 기우는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늦은 몸짓이었다.
“앗!”
그녀의 입에서 다급한 숨과 함께 얕은 비명이 다시금 새어 나왔다. 그 비명이 남자의 단단한 가슴을 때렸다.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그녀는 남자의 단단한 품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 이것 놔요.”
“내가 놔줄 거라고 생각하나?”
남자는 그녀를 단단히 옭아맨 채 시선을 낮추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봐요, 이대로 연극을 망칠 셈이에요?”
“연극이라……. 연극은 지금부터 시작 아닌가?”
“네에?”
관객들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리를 낮춘 그녀의 말에 남자가 한쪽 입술 끝을 슬며시 올리며 낮게 읊조렸다.
‘뭐라고? 연극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이 사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여자는 들을수록 더욱 알 수 없는 말만 내뱉는 남자를 보며 어이없고 기가 찼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 맞닿은 가슴으로 두 사람의 심장 소리가 엉키며 불규칙한 진동을 만들어 내었다.
말아 올린 머릿결에 남자의 옅은 숨결이 닿자 온몸에 소소한 소름이 돋아났다. 당혹함에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크게 굳어졌다.
.jpg)
TTS 제공
메뉴
로망띠끄
로그인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