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5년. 재주는 출중하나 흉한 외모 때문에 기 한 번 펴보지도 못하고 혼례조차 올리지 못한 부용. 드디어 평생을 함께 할 연호 도령을 만났건만 그조차 어이없이 잃은 후 망부석이 되고 만다. 

백년 후, 선녀탕 소유권을 걸고 ‘운명적 사랑’에 대한 내기를 거는 용왕과 옥황상제. 기한 안에 연호 도령의 환생과 다시 연을 이을 수 있다면 그와 백년해로 하게 해준다는 말에 부용은 망부석 패자부활전을 흔쾌히 받아들여, 2014년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 운명의 호텔 상속녀 서지희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3개월 동안 넓은 한양 땅에서 연호 도령을 찾아야 하는 부용은 막막하기만 하지만, 용왕의 측근에게서 받은 결정적 힌트 하나.
가장 처음 마주치는 남자가 도련님이니 어떻게든 유혹해 겟츄 하라.. 




-본문 중에서-


“○바위님, ○바위님, 우리 며느리한테 아들 하나만 점지해주세요.”
“○바위님, ○바위님, 요즘 남편이 영 힘을 못 씁니다. 넘치는 양기를 주세요.”
“○바위님, ○바위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힘 좋은 남정네 하나 내려주세요.”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찾아온 이들이 공물을 바치고 애타게 기도를 올리고 있던 중, 산중턱에 우뚝 솟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던 길쭉한 바위가 살짝 한 번 흔들렸다.
지난 백년 간 이 바위 안에서 연호 도령을 기다리고 있던 부용의 혼이 그 안에서 또 한 번 울부짖고 있었다.

‘으아아아, 빌어먹을 ○바위, ○바위! 그만 좀 해! 망부석이야, 망부석이란 말이다! 숫처녀로 죽어 망부석이 됐는데 내가 아들 점지나 양기 따위 알 리가 있냐, 이 인간들아! 양심이란 게 좀 있어 봐라! 흐흑!’

부용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바위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바위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바위님!”
기도하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주위를 맴돌며 기뻐하자 부용은 더욱더 처량한 마음에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엉, 아니라고, 아니라고, ○바위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우어어어엉.’

바로 그때,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사방이 번쩍 하더니 우르릉 우르릉, 지축을 뒤흔드는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다.
몹시 불길한 징조에 놀란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앞 다투어 산을 내려가 버리자 부용의 망부석이 자리한 곳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어디선가 갯냄새를 머금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초목을 흔들더니 이내 망부석 앞에 허리가 심하리만치 직각으로 굽은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깨어나라, 용사여.”
백발노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부용의 혼은 백 년 만에 망부석에서 분리되어 세상으로 나왔다.
투명하고 몽글몽글한 몸이 되어 허공에 둥둥 뜬 부용은 놀란 것도 잠시, 지난 백 년 간 갇혀 있었던 바위를 내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되다 말아서 그런지, 확실히 망부석이라 생각하기엔 좀 흉측해 보이기도 했다.
“노인장께선 뉘시기에 이 하찮은 혼을 깨우셨는지요.”
부용이 다소곳이 묻자 노인은 굽은 등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용궁 대신인 하성장군으로, 천 년을 산 대하이니라.”
놀란 부용이 다시 한 번 노인을 건너다보자, 허리 굽은 노인의 코 밑에서 한 줄기 씩 자라난 긴 수염이 땅바닥에 끌리고 있는 것이 과연 새우처럼 보이기도 했다.
“용궁의 고귀한 장군께서 어인 일로 미천한 저를 찾아오셨나이까.”
“허어, 성미가 급한 처자로다.”
“송구하옵니다.”
“이름은 부용, 사모하던 도령을 기다리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죽어 환생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구나. 딱하고 딱하도다.”
부용의 혼이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하성장군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건너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그토록 기다리며 안부를 궁금해 했던 연호 도령은 진즉에 먼저 죽었다. 한양으로 출발했던 바로 그날 밤, 산을 넘다 호환(虎患)을 당했지.”
“아아! 으흐흑, 역시!”
매일 뒷산으로 올라가 연호를 기다리는 부용에게 부친을 포함한 집안의 모두가 입을 모아 그의 배신을 주장했다. 최 영감이 준 돈에 눈이 멀어 그 길로 도망친 게 아니겠느냐고,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했지만 부용은 죽는 날까지 완강했다. 연호 도령이 그랬을 리가 없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고, 그것은 결국 사실이었다.
“도대체 멀쩡한 길을 놔두고 왜 하필 깊은 산길로 가셨단 말입니까, 흐흑.”
정말 알고 싶은 건가, 후회할 텐데, 하는 눈으로 부용을 건너다보던 하성장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마을을 빠져나간 후 이 길로 가는 게 빠를까 저 길로 가는 게 편할까 결정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니 급한 마음에 빠른 길로 질러가자 간 것이 호랑이굴로 곧장 통하는 길이었단다.”
“흐흑! 도련님…….”
“생전에도 그리 결정을 못 내리고 우유부단한 자는 그 습관이 죽어서도 안 고쳐지지. 그놈, 염라대왕 앞까지 가는, 길이라곤 단 하나밖에 없는 곳까지도 그렇게 오래도록 결정을 못하고 가다 서다 해서 지켜보는 이들이 숨넘어갈 뻔했다고 하더구나. 걸레는 역시 삶아도 걸레인가.”
묘하게 약이 오르는 말에 부용이 울컥하던 순간, 그가 놀라운 질문을 했다.
“그래도 그런 놈이 좋다면, 한 번 더 만나볼 테냐?”
“네에?”
“옥황상제와 용왕폐하께서 네게 기회를 한 번 더 내리시기로 했다.”
“무슨……?”
“네가 그토록 바랐던 그 연호 도령은 먼 미래에 환생했는데, 네가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지. 너를 그 시대로 보내줄 테니 일 년 안에 그를 찾아 다시 연을 이으면 백년해로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놀란 부용은 크게 기뻐하며 몇 번이고 엎드려 절을 했지만, 이어지는 말에 동작이 딱 굳고 말았다.
“그러나 만약 그를 찾지 못하거나 엉뚱한 이와 연이 이어진다면, 일 년째 되는 날 너는 다시 이 ○바위 안으로 돌아와 환생 없이 영원히 살게 될 것이야.”
너무도 충격적인 제안에 부용이 주저하자 하성장군이 재촉했다.
“자, 어떻게 할 테냐.”
실패 시 위험부담이 이렇게나 큰 결정이라니, 뭔가 억울하기도 했지만 기회가 아주 없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부용은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더 이상 한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도 지치옵니다. 직접 가서 찾을 테니 저를 그곳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