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앞집에 사는 곱상한 총각인 줄 알았는데…….

“너! 속옷 사이즈 뭐야!”
“예?”
“속옷 사이즈 뭐냐고!”
“85 스몰이요.”
“위는?”
“75AA……. 헉!”
“너, 여자였어?”

잠깐.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이래야 되는 거지?

“말해! 여자였냐고!”
“여자였던 게 아니라 여잔데요.”
“근데 왜 말 안 했어!”
“제가 남자라고 말한 적은 없었잖아요.”
“그럼 왜 내가 총각이라고 부를 때 가만있었어!”
“그래서 제가 총각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요.”
“너……. 네가 왜…… 여자야?”

다른 건 몰라도 절대 불공평한 건 참지 못하는 ‘로망스’ 주인아저씨 차강현과 가슴 가득 로망을 꿈꾸는 ‘로망스’의 단골 총각(?) 강준휘의 로망과 현실을 적당히 오가는 알콩달콩 로맨스.

“여기 혹시…… 로맨스도 파나요?”



<본문 중에서>

책을 빌려 대여점을 나오고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다.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 주로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는 그녀는 남자들이 바지 지퍼를 내리는 동작에 대해 그다지 민감해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꺄악!”
웬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맞춰 준휘의 걸음도 함께 멈췄다. 이건 예외적인 상황이다. 소리를 질러댄 여자의 바로 앞에서 한 남자가 불쑥 지퍼를 내리곤 자신의 물건을 꺼내 여자 앞에 들이밀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남자 화장실 안에서 지퍼를 내리는 남자들의 손동작까지만 허용된 그녀의 지각 체계는 갑자기 쫑긋대며 제 존재를 알리는 그 남자의 물건에 전혀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한 채, 굳어진 시선을 그 남자의 물건에 쏘아 박은 터였다. 대여점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준휘의 등장에 그 남자도 당황했는지 얼은 듯 멈춰 선 채 여자와 준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바바리맨들은 남자 앞에선 이런 짓 절대 안 한다고 들었다. 그의 눈엔 지금 준휘가 남자로 보일 테니 제 앞에 맞닥뜨린 이 상황을 과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눈알을 굴리며 망설이는 중인 것 같았다.
앞에서 비명을 지르던 여자가 바로 뒤에 서 있는 준휘의 존재를 알아채곤 냉큼 그녀 등 뒤로 숨어들었다. 어? 그나마 있던 보호막이 사라진 뒤다. 그녀 역시 난생처음 보는 남자의 물건에 ‘아, 그게 저렇게 생겼구나’ 하고 태평하게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헉, 저게 저렇게 생겼…… 징그럽다.
사랑을 나눌 때 ‘단단히 부풀어 오른 남성’으로 표현되는 그것이 저렇게 생겼을 줄이야. 그걸 이렇게 코앞에서 리얼하게 감상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아, 머릿속에서 꿈꾸던 ‘내 남자’의 성욕이 순식간에 발기부전으로 뒤바꿈 되는 찰나였다.
“너! 내가 그렇게 우스워? 왜, 내 것이 작아서 그래? 넌 얼마나 큰데?”
눈을 부릅뜬 채 남자의 거시기를 노려보던 준휘 앞에 남자가 당황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러대었다.
나는 절대 당신이 우스워서도, 당신의 물건이 작아서도, 그렇다고 내 것이 커서도 아닙니다. 나는 그저 놀랐을 뿐.
하지만 바바리맨의 눈엔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로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거시기를 노려보고 있는 준휘가 무척이나 대담한, 아니, 자신의 거시기를 무척이나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걸로 보였는가 보다.
자존심이 상한 듯 ‘씨!’ 하고 탄식을 뱉어낸 남자가 냉큼 지퍼를 올리고 허둥지둥 사라졌다. 걸음을 옮겨야 하는데 다리가 달달 떨려서 움직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도 대여점에서 빌린 책은 꼭 움켜쥔 채 골반 옆에 착 붙여놓은 상태였다.
한 걸음을 내디디려고 하는 찰나 등 뒤에서 셔츠의 소매 춤을 꼭 움켜쥔 손이 느껴졌다. 마치 그녀가 방금 전 대여점에서 빌려온 소설책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바들거리는 손으로 꼬옥 움켜쥐었던 것처럼.
“괜찮아요?”
등 뒤의 여자에게 물었다. 하얗게 질린 여자는 준휘의 물음에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고 서 있었다. 거기서 그냥 그 여자를 두고 제 갈 길을 가야 했는데 질끈 눈을 감은 준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 커피숍으로 들어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