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 아이의 하얀 웃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 번째 사랑, 생애 처음으로 내 모든 걸 내어주며 사랑했다. 세 번째 사랑, 남들 다 하는 사랑 나라고 못하랴 싶었다.
하지만 첫사랑, 설레는 감정 한조각도 보이지 못한 채 끝이 나버렸다. 두 번째 사랑, 지독한 상처와 함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세 번째 사랑, 씁쓸함만이 남았다.

사랑. 남들 다 하는 그 흔하디흔한 사랑이란 것은 그렇게 아름답지만도, 숭고하지만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나간 사랑들의 흔적과 마주하는 교차점에 서면 마음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이유 없는 우울함까지 끌어와 입 안을 씁쓸하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니까 외롭고 그렇기에 사람만이 정답이다. 아름답지 않아도, 숭고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이 사람이 소중하고 이 사람이 걱정되고 보고 싶고. 그걸로 충분하다. 굳이 거창할 필요도, 화려할 필요도 없고 그저 이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오늘도 난 인연으로 시작되어 운명으로 계속 될 사랑을 꿈꾼다.

-본문 중에서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란 것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단순한 사실 때문에 모든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 혼자 잘한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이란 것은 두 사람이 서로 애정을 가지고 잘 해야지 유지가 되는 것이었다.
“후. 그래. 안 그래도 말할 게 있어서 보자고 했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 가는 현태를 보며 불현듯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 스쳐 가는 짧은 표정에 이별을 예감하는 순간이 있다. 그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여자는 불현듯 그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오빠, 갑자기 무슨.”
“갑자기는 아니지. 너도 요새 힘들었잖아.”
이별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 사랑은 약자에게 굉장히 잔인한 면모를 보이곤 한다.
“넌 참 뭐든 쉬워서 그게 힘들다. 못난 마음이 자꾸 들게 하는 여자는 별로야.”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그것을 공유한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그들 사이를 어정쩡하게 나누었던 좀 더 사랑한 사람의 불공평한 숙명이었다.
서로 사랑하기에 다른 것을 이해해야 하고, 다툼도 있을 수 있지만 약자에게는 그럴 권리나 기회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일방적인 사망선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억울하게도 말이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내가 더 많이 생각하고, 내가 더 끝까지 그 사람을 위했는데 왜 내가 약자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시간을 좀 가지자. 내가 연락할게.”
이렇게 냉정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하윤은 일어서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저 사람과는 끝이 났구나, 란 생각과 함께 왈칵 서글픔이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리보기

“먹어요?”
“?”
갑작스런 태준의 말에 그대로 고개를 들어 태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뚝뚝한 얼굴에 작게 웃음이 번졌다. 어린아이가 엄마 립스틱을 훔쳐 바른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표정이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맛있어요?”
“아뇨. 먹는 거 아닌데.”
당황하자 서둘러 입을 연 하윤 덕에 고스란히 립스틱 색상을 감상할 수 있는 태준이었다.
“흠. 예쁘네.”
하지만 대충 바른 덕분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하윤이 입술을 먹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랫입술 쪽에 튀어나온 부분이 태준의 눈에 거슬렸다. 조그마한 얼굴이 고스란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몹시 만족스러웠지만 말이다.
“어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린 태준이 엄지손가락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닦아냈다. 태준의 손이 자신의 입술 부분을 쓰는 것이 느껴지자 동그란 하윤의 눈이 더더욱 커졌다. 하지만 잠시 후 태준의 행동에 하윤은 더욱 놀라고 말았다.
“맛은 없네.”
하윤의 입술을 쓸어내렸던 엄지손가락을 그대로 자신의 입으로 가지고 가 슬쩍 맛본 태준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 어.”
하윤은 바보처럼 어버버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키스할 땐, 바르지 마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피식 웃은 태준이 그런 하윤이 귀엽다는 듯 볼을 쓰다듬을 때까지도 마치 얼음이 된 듯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는 하윤이다.
“알았어요. 그런 거 간섭 안 할게요.”
하지만 여전히 별말 없이 놀란 듯 태준을 바라보고 가만히 서 있는 하윤이다. 어쩐지 마른침이 넘어갔다.
“흠.”
그런 하윤을 보고 태준이 갑자기 고개를 내렸다.
“맛없어도 내가 참을 테니, 이제 그만 보지? 정말 키스하고 싶으니까.”
움찔하는 하윤의 고개 옆에 얼굴을 가져다 댄 태준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에 하윤은 정말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얼굴에 화악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서둘러 고개를 숙인 하윤이 서둘러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저기, 여기. 화장 솜이요.”
왜 보고 있는 자기가 부끄러운지 모르겠다며 다가온 직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들에게 내민 자신의 손은 또 왜 이리 부끄러운 것인지, 괜히 애꿎은 한숨을 내쉬는 직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준이 직원의 손에서 솜을 받아 들었다.
“닦아 줘요?”
“아, 아뇨.”
서둘러 고개를 든 하윤이 태준의 손에서 솜을 받아들곤 서둘러 입술을 벅벅 닦아냈다. 왜 그 모습을 보는데 또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피식 웃고 마는 태준이다.
“누나한테는 이 색상보다 하윤 씨가 처음에 들었던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요.”
어쩐지 조금 정신이 없어 보이는 하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거 두 개 주세요. 이건 포장해 주세요.”
세영에게 주기로 한 립스틱 외에 하윤이 발랐던 립스틱까지 함께 달라고 말하는 태준을 보고 아직은 홍조가 남은 얼굴로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 마는 태준이다.
“맛은 없어도 예쁘니까.”
곧장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하윤을 보며 어째 놀리는 재미가 자꾸 생긴다며 픽 웃은 태준이 하윤의 손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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