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그가 갑자기 말을 놓았다. 단순히 말을 놓았다는 사실보다는 그 말에 깃든 서늘한 기운에 그녀의 등줄기가 오소소해졌다. 선현은 어금니를 꼭 깨물었다. 그에게 상처 입힐 생각은 없었는데, 그는 어째서 자신과 같은 속물이 아닌 건지. 그렇고 그런 남자가 나왔더라면 일이 한결 쉬웠을 텐데 말이었다.
“솔직하지 못해서 쓸데없이 기대하게 만드는 건 더욱 잔인한 일이지요.”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그는 남은 커피를 단숨에 꿀꺽 마셨다. 입 안 가득 번지는 커피향이 오늘따라 유난히 비릿했다. “잔인하고 영리한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인간이 아니라 요정처럼 보이기 위해 발끝을 세워 춤을 추므로 발레리나를 현실속의 그것이 아닌 환상으로 보이게 만드는 뽀앵뜨. 최대한 땅에 닿는 면적을 줄여 하늘로 하늘로 솟구치기만 하려는 인간의 염원을 담은 고통스런 예술. 이제 그녀의 뽀앵뜨는 더 이상 속죄의 눈물로 얼룩진 몸부림이 아니었다. 천상의 언어를 대지에 전하는 전달자의 생생한 몸짓으로 다시금 태어났다. 그녀가 날아오른다. 무거운 족쇄를 벗고 새털처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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