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상처투성이의 진실''''우기였다.'오후부터 내린 비는 어둑한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밤이 되도록 끝날 줄 모르고 지독하게 쏟아졌다. 공사를 중단한 지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의 어두운 뒤편에서 고함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엉키며, 예닐곱 명이 족히 넘는 사내들이 한 남자를 바삐 둘러싸고 있었다. 회색의 비를 장막으로 하여 세상과는 단절된 그들만의 행사가 바야흐로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조용하지만 의미심장한 눈짓을 하자, 다른 이들도 근처에 쌓인 폐자재 더미에서 무기가 될 만한 각목을 손쉽게 하나씩 골라 들었다. 살기등등한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처지라면 누구라도 벌벌 떨기부터 할 터인데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없었다. 한 발 앞으로 나섰던 우두머리 사내가 그런 그를 보며 비릿한 비웃음을 흘렸다.'“니 오랜만이네. 하여간에 개 폼 잡는 건 여전하고만. 니 시다바리들은 다 우짜고 어째 우리 동네까지 혼자 와가 이리 어슬렁거리는데? 권태희, 내가 니 잡으면 곱게는 안 보내 줄 거라는 거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그새 내 경고를 까묵었나? 그렇게 잘난 척해 대더니 생각보다는 머리가 많이 나쁜 모양이구만.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싹싹 빌면 내 옛정을 생각해서 한번 봐줄 수도 있을 긴데 우떠노, 니 생각은?”'“새끼……, 하여간에 다 큰 놈이 애들처럼 까먹었냐가 뭐냐? 계집애처럼 말만 많은 건 여전하구나. 독구야, 계속 거기서 입만 벌리고 서 있을 거냐? 이제 슬슬 지루해지려고 그런다. 그만 시작하자.”'보조개가 파이게 씩 웃은 남자는 상대편에게 손바닥을 보이도록 손을 펴서 까닥거리며 허세를 부렸다. 독구라 불린 사내는 단박에 붉어진 얼굴을 하고 이를 부득 갈았다. '“시팔! 동구! 동구! 개새끼야!”'김동구. 그는 매번 태희가 자신의 이름을 동네 똥개 부르듯이 부르는 것 때문에 잔뜩 약이 올라 있었다. 권태희란 놈은 사사건건 그런 녀석이었다. 어차피 저나 나나 다 높은 양반님들한테 붙어먹는 주제면서 지 혼자 고고한 척 고개를 모로 비트는 것도 재수 없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키가 훌쩍 커서 매번 자신의 머리꼭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더럽게 기분 나빴다. 뿐인가, 꼽자고 들면 그가 미운 이유는 수도 없었다. '“그래, 좋다. 니가 꼭 그렇게 피를 보자는데 내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럼 한번 죽어 보든가. 언제까지 그리 잘난 척할 수 있는지 보자고.”'동구는 뒤로 한 발 물러서며 자신을 든든하게 둘러싸고 있는 무리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새끼! 죽어!”'“으아아아아!”'사내들은 괴성과 의미 없는 욕설을 두서없이 내지르며 혈혈단신의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사실 머릿수만 봐도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지만 권태희, 그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가 무슨 중국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늘을 난다거나, 아니면 무술을 오래 연마했다거나 하는 특출한 기술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평소 조용하다면 조용한 그의 표정이 이런 때가 되면 상대편이 질겁할 정도로 판이하게 바뀌었다. 눈가에 귀기가 서리며 씩 웃어 버리는 그 입매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게다가 상대가 다치든 자신이 다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놈이었다. 이 바닥에서 일하다 보면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놈이 죽는 거 다치는 거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놈이라지 않던가. 권태희는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