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Remember

“진짜 끈질기네.”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인지도 모르고 이러실까? 너야말로 올해는 좀 나와 주는 게 어때?]

“싫어.”

[걱정 마, 올해도 걔들 안 와. 안 온다고!]

“걔들 때문에 내가 출석 안 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고.”

[그럼 문제가 없겠네, 그렇지? 나도 더는 양보 못 해, 못 한다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상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진 여자는 정말 이 상황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어우, 왜 이렇게 소리는 질러.”

[너 같은 친구 때문에 속이 터져서 그런다, 왜!]

“너희들이랑만 연락하고 사는 게 난 더 좋은데, 자꾸 왜 그러실까?”

[아, 몰라, 너 꼭 이번에는 나와 좀, 알았냐?]

“……생각해 볼게 그럼.”

[그래, 그래 다른 애들이 너 꼭 보고 싶다고 어떻게든 나오게 하라고 난리니까, 꼭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응?]

“알았어, 알았어, 끊어, 응.”

가까스로 통화를 종료하고 난 후 깊은 한숨이 나오는 여자는 표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의식 속에 숨겨 둔 혼자만의 사랑을 또다시 떠오르게 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생각만 하는 것으로 왼쪽 가슴이 아려 왔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덜 아플 때도 되었는데.”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그의 사랑이 이루어졌음을 곁에서 축하를 해주는 것이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었던 그때를 생각하는 일은 그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짐을 짊어지는 것과도 같았다.

“왜 항상 아픈 일이 먼저 생각나는 걸까.”

아무런 의미 없이 옷장 속에서 꺼내는 옷처럼 차라리 정리가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결국 그녀의 기억은 한 남자에게는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시간을 살아가게 하고 있었다.

“늦었구나.”

“네. 안 주무셨어요?”

“방금 주아가 잠들었어, 아빠 기다린다고 어찌나 고집을 쓰는지.”

“그랬어요? 오늘 분명히 늦는다고 했는데, 녀석이 어머니 힘들게 했었나 보네요, 죄송해요.”

“아니다, 식사는 했지?”

“네, 먹었어요, 올라가 볼게요, 주무세요.”

“그래.”

“재하야.”

“네?”

“아니다, 어서 들어가.”

그가 사랑이라고 믿었고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결실은 달빛에 비친 채 잠들어 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남자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우리 공주 잘 자네.”

그 사랑의 결실인 아이의 눈물로 결단하게 된 이별이 과연 잘한 것인지 하루에도 수만 번 수천 번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다.

“우리 주아 아빠 많이 기다렸구나, 미안해, 잘 자라, 나의 천사.”

다시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주하게 될 빛을 향해 걸어 나가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었다.

#part1…기억에 머문다

“재하야. 요새 어디를 그렇게 나가는 거니?”

그 시절 그날, 소현은 외출을 하는 소년 재하가 신기했다.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체중 미달로 인해 인큐베이터에서 겨우 자유로워진 손자의 건강이 걱정된 집안어른들의 성화가 만연했었다. 그러한 이유로 복용한 한약의 부작용인 체중 증가로 인해 놀림을 당하던 아들은 몇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등 주로 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왔기에 이러한 변화가 반가웠다.

“친구 만나러 가요.”

“그래, 친구……!”

하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 위치한 친구라는 단어가 자신의 눈가를 시큰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 소현은 한동안 재하가 나간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그 아이의 무엇이 재하를 변하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