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Butterfly

“우와.”

“이곳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만년설 지대입니다.”

아이슬란드…… 현존하는 불과 물의 나라에 도착해 몇 명의 사람들과 이곳의 빙하 그리고 화산을 목격하는 아진은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이 살고 있던 세상의 문제들을 이미 잊어버린 듯 대자연 앞에서 편히 숨을 쉬고 있다.

“바트나요요쿨이라는 지명의 뜻은 호수의 빙하라고 하며.”

검은 모래로 둘러싸인 이 땅은 그녀가 이곳에 오기 전의 마음처럼 황량하게 보이지만 그 가운데 얼어붙은 빙하가 녹아 만들어 낸 푸른빛과 초록빛을 띠는 물은 마치 지금 현재의 쉼을 즐기는 그녀의 웃음을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다음 일정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이곳의 대자연 앞에서는 조금은 복잡한 개인의 고민과 문제들은 보란 듯이 사라지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아진은 책자에서 본 4월부터 시작되는 백야로 인해 느긋하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동안에도 여유로움이 묻어나 있었다. 유창하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아이슬란드의 언어가 기재된 단어장과 영어를 구사하는 재미에 빠져 있기도 했다.

“이곳은 아이슬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원입니다. 마음대로 뛰고 걸으시면서 20분 후에 이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아진은 이제 이틀째 시간을 보내는 이곳의 모든 것이 신기하다. 관광 명소를 가는 중간마다 펼쳐지는 초원 속 폭신폭신한 잔디를 밟아 보는 일도 행복했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인적이 드믄 초록색 들판 위를 달리는 일도 생애 누려 본 가장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와, 정말이네요?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하지? 이불 솜 같아요.”

“이곳의 초원은 인적이 드물기도 하고 자연의 순리대로 나고 자란 생명이 있는 곳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차를 탑승하여 산지대를 이동하면 커브를 돌아갈 때 마주하는 낭떠러지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지는 만년설이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뒤를 한번 보시면 더 놀라실 겁니다.”

당장의 앞길은 높디높은 절벽일지라도 조금만 몸을 돌려 뒤로 시선을 돌리면 황무한 대지와는 반대로 울창한 숲 속의 공기가 그녀의 심장을 가득히 채워 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아진은 이 자연이 마치 자신의 텅 비어 버린 마음을 차곡차곡 감싸 안아 주는 것만 같았다.

“어? 왜 이러지?”

“차가 갑자기 멈춰서다니.”

“그러게요, 하필이면 이 넓은 도로 위에서.”

또한 어느새 서부 반도를 향하는 여행의 중반부 또 다른 기억이 그녀를 잠시 멈추게 했다.

“피오르드를 따라오는 도로에 일부러 올라탄 건데 시간 단축 목표는 틀려 버렸군.”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광야 가운데 위치한 넓고 커다란 도로 위에 주차를 하게 된 차량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 몇몇 사람을 등지고 아진은 문뜩 햇살 주변을 채우고 있는 구름들의 움직임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구름은 좋겠다. 자유롭게 하늘을 지나잖아.’

그러고는 하늘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홀로 부럽다는 듯 나지막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 이런 곳에 꽃이 있네?’

또한 군데군데 펼쳐진 초원 주변에 보이는 철쭉을 향해 마음을 빼앗기듯 걸었다. 고요히 자신을 향해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만 같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비다!”

그때 하늘 위에서 내리는 빗물로 인해 주변이 조금은 어수선해졌다.

“최아진 씨! 어서 와요.”

“조금뿐이니까 잠시만 여기에 있을게요!”

하지만 땅 아래로 쏟아지는 빗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녀는 그대로 서 있기를 선택했다. 하필이면 이런 때 조용히 내리는 이빗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신과는 다른 의미였지만 다정히 부르던 그 목소리가 떠올라 주르륵 흐르는 이 빗줄기처럼 기어이 참았던 마음이 흘러내려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