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현관문 너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건만 이건은 알 수 있었다. 온몸이 배배 꼬이는 듯한 격한 통증에도 쿵쿵 뛰는 심장이 말하고 있었다. '‘네가 기대고 있는 문 너머에 그녀가 있다고. 그러니 어서 문을 열라고.’ '그 심장의 말에 이건은 이를 악물어 터져 나오려 하는 통증을 삼켜냈다.'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아 보지만 그 좁은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려 하는 소리에 이건은 휘청거리며 현관을 지나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고 재킷 주머니에 들어 있는 약통을 꺼내 진통제를 물 없이 삼켰다.'약을 처방해 주던 의사가 그랬다. 약의 개수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점점 더 강한 약을 찾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되기 전에 다시 검사 받고 치료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 말에 이건은 갈 곳이 있다고 말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하, 하아.”'의사의 말이 점점 들어맞고 있었다. 발작과 같은 통증의 주기가 짧아졌고, 먹게 되는 진통제의 수가 늘어났으며, 점점 더 강한 진통제를 처방받게 되었다. 많이 삼킨 진통제 때문인지, 아니면 통증에 의한 환각인지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이건은 의식을 잃었다.'털썩. 힘없이 소파에 쓰러진 이건이 걱정되는 듯 샤티엔이 뛰어 올라 그의 얼굴을 핥아 보지만 닫힌 눈꺼풀은 들려지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이건을 향해 사납게 짖던 샤티엔은 그래도 깨어나지 않는 그를 뒤로하고 소파에서 뛰어내려 현관문으로 달려가 두 발로 탁탁 치며 짖었다.''온몸은 통증으로 인해 식은땀으로 뒤덮였지만 의식을 잃은 이건은 따뜻한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건은 그 꿈에서 촬영장에서 부상을 입었음에도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다친 것을 감추며 괜찮다는 듯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시현을 만났다. 그 환한 웃음이 잠들어 있는 이건의 의식을 툭 건들었다.'“하아.”'참고 참았던 숨이 터짐과 동시에 이건이 눈을 뜨고 돌아오지 않는 시야에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그제야 막혔던 시야에 익숙한 거실이 보였다. 또다시 긴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사우나를 한 듯 온몸이 축축했다. 씻기 위해 몸을 일으켜 보지만 두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 하고 쿵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하, 갈 때까지 갔네.”'자꾸만 터지는 실소에 이건이 누운 그대로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현관문을 바라봤다. 이미 밖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옳았다.'이 집을 얻고 이사를 왔을 때 이건이 제일 먼저 한 것은 20개가 넘는 시계를 거실과 방 곳곳에 놓아두는 일이었다. 거실만 해도 커다란 시계를 비롯해 작은 탁상시계까지 합해 7개가 넘었다.'그랬던 시계가 지금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흘러가는 시간이 두려운 이건의 마음이 어느 순간 하나씩 없애게 만들었고 그 두려움은 집 안의 모든 시계를 창고 방에 넣고 문을 잠그게 만들었다.'“시계를 없앤다고 시간이 멈추는 것도 아닌데. 하나는 남겨 둘 걸. 휴.”'자꾸만 터져 나오려 하는 한숨을 삼켜 보지만 그 한숨은 목을 타고 입술을 타고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건은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 시작된 숫자가 4000이 되었을 때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그 안으로 들어간 이건은 경직된 몸을 감싸는 따뜻한 물에 꿈속에 만났던 시현의 웃음을 떠올렸다.'“그 웃음…… 다시 보고 싶다 말하면 내 욕심이 되는 건가? 그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