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이름은 마권우, 이름만 대면 다 알 법한 대기업인 윤성 그룹 계열의 식품회사 윤성 푸드에 다니고 있고, 직책은 팀장. 갓 태어난 아이부터 곧 상수(上壽)를 앞둔 어르신까지 윤성 푸드의 제품을 먹게 하고자 밤낮없이 노력한 끝에 나는 꽤 젊은 나이임에도 당당히 마케팅 2팀이라는 윤성 푸드 주요부서의 팀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쑥스럽긴 하지만, 윤성 푸드가 문을 연 이래로 최연소 팀장이라고 하니,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은 증거를 대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혹시나 궁금할까 나에 대한 설명을 굳이 하나 더 덧붙이자면, 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눈에 띄는 내 마스크 때문에 한 번,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뭐든 만능인 내 능력에 한 번, 사람들은 몇 번이나 나에게 감탄의 시선을 보내오곤 했었다. 뭐, 옥에 티처럼 사람들이 나에 대해 성격이 꽤 까칠하다고 평가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와 어떤 일이든 허투루 넘기지 않은 완벽주의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까칠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원래 잘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질투를 받기 마련이라는 것도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나 잘난 맛으로 살아온 나에게 요즘 들어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팀장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햇병아리 신입 사원. 내가 맡고 있는 2팀에 들어온 지는 약 5개월 정도 됐을까, 힘겨운 사회생활 보다는 편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캠퍼스를 누비는 게 훨씬 어울릴 것 같은 앳된 그녀가 자꾸 내 눈에 아른거린다는 게 지금 나에게는 우리 팀이 진행하게 될 프로젝트보다 커다란 문제였다.

하지만 나의 착잡한 마음을 모르는 그녀는 나의 부하 직원이자, 그녀의 상사인 김 대리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신이 없는 듯 보였다. 한 눈에 보아도 김 대리의 웃기지도 않는 우스갯소리를 들어주고 있나 본데,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에 억지로 웃어주려 노력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만큼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왜 하나하나 웃어주는 걸까. 무섭게 정색 한 번 하면 다시는 재미없는 농담을 못할 텐데.

별 영양가도 없을 농담을 주고받는 부하직원들의 행태에 기분이 나빠졌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되뇌며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폭신한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팀장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분명 그녀에게서 눈을 뗐는데, 어째서 내 앞에 여전히 그녀가 보이는 것인지. 환영처럼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천장 위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난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던 걸까. 아니다, 설마하니 내가 사회생활에 처음 발을 디디며 눈을 빛내는 신입 사원에게 첫눈에 반했을 리는 없다. 그런 믿음은 상사로서 신입사원을 마음을 품게 된 나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였다.

지금 상황을 놓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스울 수 있지만,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지, 연애를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게 그간 고수해오고 있던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난 그 생각에 따라 나 나름대로 만든 사내 연애 금지라는 규정을 이제까지 잘 지켜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내 마음이 이렇게 울렁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허우대 멀쩡하고, 앞으로의 장래가 촉망되는 내 주변엔 언제나 인공위성처럼 여자들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여자나 만나고 다니는 바람둥이는 아니니,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쨌든 내 주변 여자들을 아무리 찾아봐도 저렇게 햇병아리 같은 여자는 없었다.

천장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다시 돌려 그녀의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그녀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그녀는 내 어머니를 닮지도 않았고-우리 어머니는 우아하시다.-, 그렇다고 내 첫사랑을 닮은 것도 아니었다. -내 첫사랑은 청순했다.-

내 과거, 주변 여자들을 돌아봐도 그녀처럼……,

“왜 웃는 거야.”

사랑스러운 여자는 없었다.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쳐진 그녀의 눈과 입술을 보자 아주 버릇처럼 ‘미치겠네.’ 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내가 나의 괴로운 마음을 없애려 눈을 감고 있는 와중에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네.”

“팀장님.”

그녀였다. 지금 그녀 얼굴을 보는 건 괴로운데 말이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내가 시킨 보고서 때문이라는 건 알지만, 젖살 있는 얼굴과 달리 마른 몸에 쭉 뻗은 다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자 팀장의 본능이 아닌 남자의 본능이 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짝사랑에 빠진 날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어떤 여자를 대하던 성인 남성으로서의 우위를 지켰던 내가 그녀만 보면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까까머리 소년처럼 변해버린다는 것, 몸도 마음도 모두. 이 신성한 회사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