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스산하고 조용한 서재.

두 명의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책상에 앉은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자와 사진을 손에 들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서 있는 젊은 남자는 그렇게 오래도록 아무런 말도 없었다.

“괜찮겠습니까? 파장이 클 수도 있습니다.”

젊은 남자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젊은 남자의 지적대로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한 나라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자를 암살한다는 것은 성공을 해도 아니, 실패할 경우엔 자신들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었다. 자신들에게 암살을 의뢰한 의뢰인은 실패와 동시에 자신들에게 최대의 적이 될 것은 긴 세월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었다. 한동안 대천문의 공세에 밀려 체면을 구긴 일이 빈번했지만 비살문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수와 화가 장성한 후 그 어떤 의뢰도 실패하지 않았기에 이번 의뢰도 그리 염려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은밀하고 자연스럽게 처리해야 하니 이번 일은 네가 처리해 줘야겠다.”

중년 남자의 말에 수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비살문에서의 시간이 쌓여 갈수록, 하나의 생명을 거둘수록 그 수만큼 자신의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채워지고 있었고 이제는 더 들어갈 자리가 없을 만큼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닙니다.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나 비살문을 전부 집어삼킬 수도 있습니다.”

“안다. 허나 의뢰를 거절한다고 해도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는 우리를 곱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의뢰가 들어온 순간 이미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가 불필요하다는 듯 두툼한 서류 봉투를 챙겨 들고 서재를 나서는 수의 얼굴엔 그 어떤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 일을 시작한 후 언제나 철저하게 자신의 감정을 숨겼기에 복잡한 머릿속은 절대 얼굴로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의뢰야? 같이 할까?”

“은밀하게 처리해야 해.”

수의 입에서 은밀하게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서재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화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수의 말처럼 은밀하게라는 것은 수의 단독 임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신나는 일이 생겼다며 재미있어했던 화는 짜증 난 얼굴로 돌아섰다.

‘빌어먹게 매번 은밀하게지. 나도 은밀하게 임무를 처리할 수 있는데……. 쳇!’

같은 시간. 비살문과는 너무도 대조적이게 북적거리는 커다란 회의실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여 앉아 서로 머리를 맞대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이례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직접 부탁한 일이기도 했지만 너무도 중요한 일이기도 했기에 회의실에 모인 남자들의 얼굴엔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잠시 후 현직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대천문의 82대 문주인 일한이 등장하자 일제히 남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일한이 상석에 앉고 뒤이어 남자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일한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차기 대권 후보인 김민국 의원님의 경호를 맡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 이미 경호를 하고 있지만 대통령님의 부탁으로 우리 대천문이 근접 경호를 맡기로 했다. 앞으로 대선까지 아니, 당선되신다면 청와대에 들어가실 때까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경호의 단계는 어느 정도입니까.”

일한의 옆에서 서류를 뒤적이던 석진이 물어 왔다. 특별히 자신들에게 의뢰를 해왔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비살문이 움직이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비살문이라는 일한의 말에 모두들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현재 최대의 암살 조직인 비살문은 일본의 닌자처럼 신출귀몰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들의 표적이 되어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근래 들어 도무지 그들의 암살을 막을 도리가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할 수 있겠느냐.”

“현재 김 의원님의 경호를 맡고 있는 곳에서 계속 경호를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비살문이 움직이고 있다면 저희 대천문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괜한 경각심을 심어 주어 더욱 은밀해지면 일이 어려워질 테니까 저를 비롯해 세 명만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일한은 자신의 아들인 석진이 말한 세 명이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대대로 왕을 수호했던 대천문은 세월의 흐름에 맞춰 대통령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을 경호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자신의 대를 이어 대천문을 이어 갈 석진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이 일한을 한없이 든든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