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 씨, 참 매력적인 사람이네요.”'순간 방싯거리며 풀어져 있던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별다른 내색 없이 그저 무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짧은 순간 그녀의 눈빛이 유리에 패인 흠집같이 날카로워졌다.'‘네가 너무 매력적이라 눈을 뗄 수가 없었어.’ 그도 이렇게 말했었다.'엷은 미소를 짓고 진지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준을 그녀가 꿰뚫듯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응수했다.'“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거만한 표정을 일부러 지어 보이며 말하는 은수의 반응에 도준이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아…… 그러세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그의 비꼬는 반응에 은수가 너털거리며 웃었다. 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불빛은 다시 산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멀리 산장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그런데 공무원이라면서 이렇게 평일에 시간이 나요?”'지나가는 말처럼 그녀가 물었고, 지나가는 말처럼 그가 대답했다.'“몇 년 동안 외국에 있었어요. 이번에 귀국한 거라 며칠 쉬는 겁니다.”'“와아～, 외국물 먹은 사람이군요. 갑자기 대단해 보이네요.”'그녀가 신기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위아래를 그를 훑었다. 도준이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그가 방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을 따라하며 똑같이 잘난 척하듯 어깨를 으쓱이자 은수가 땡감 씹은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아, 네. 어련하시겠어요.”'그의 웃음소리가 조금 더 짙어졌다.'멀리에 있던 산장이 이제 가까워져 환한 빛이 두 사람에게까지 닿았다. 둘은 잠시 찾아온 침묵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발아래 밟히는 흙의 촉감에 귀 기울였다. 귀뚜라미 소리, 개구리 소리, 알 수 없는 이름의 풀벌레 소리가 그들이 걷는 길을 따라 울었다.'산장 앞에 있는 마당에 들어서자 은수가 젖은 바지와 운동화를 얼른 갈아입으려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현관문을 열려는데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오던 그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은수 씨…….”'그녀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돌렸다.'“네?”'그녀는 부드럽지만 진지한 두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강물엔 또 들어가지 말아요.”'사방에서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가 잠잠해졌다. 찌르르 소리를 내며 불을 밝히던 전등도 침묵을 지켰다. 나뭇잎을 흔들며 싸라락거리던 바람 소리도 고요히 가라앉았다. 울컥,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데 눈물을 전혀 흐르지 않는 상태. 단지 목에 무언가가 걸려 쓴물이 느껴졌다. 그녀가 목 안으로 그 쓴 덩어리를 힘겹게 삼켰다.'그녀가 메마른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준은 그녀가 짓는 작은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유심히 바라보았다. 결국 은수가 먼저 시선을 돌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준은 잠시 정원에 서서 걸어온 숲길을 응시했다. 마당 한가운데를 비춰주는 전등으로 수많은 불나방들이 모여들어 땅바닥에 그들의 날갯짓이 너울거렸다. 그가 주머니에 있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빨간 담배 끝이 타 들어가면서 그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떠돌며 주변을 넘실거렸다.'‘빛을 보면 매혹되어 다가가는 불나방이 아직 그의 속에도 살고 있을까.’'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묵묵히 마당을 거닐던 그가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일층에서 소란스럽게 놀던 손님들은 이제 모두 잠이 들었는지 거실은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거실을 환하게 비추던 형광등도 꺼지고, 벽에 붙어 있는 불빛만 은은히 거실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그는 곧장 주방 쪽으로 걸어가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 향이 퍼지며 유리 포트 안에 커피가 쪼로록 내려지는 모습을 의미 없이 쳐다보고 있는데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계단을 쳐다보니 그녀가 내려오고 있었다. 샤워를 했는지 머리카락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은수는 그를 발견하곤 걸음을 멈칫하더니 이내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컵 하나를 더 가져와 옆에 섰다. 활기차게 떠들던 아까와는 달리 은수는 말이 없었다. 도준이 그녀의 컵에 커피를 따르곤 자신의 컵에도 따랐다. 둘은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그녀가 반쯤 남은 커피를 주방에 두고 걸음을 옮기려다 그에게 고개를 돌려 꾸벅 인사를 건네듯 고개를 숙였다. 그도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둘은 나무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정적이 감도는 실내에 두 사람의 걸음 소리만 삐거덕거렸다. 그녀가 먼저 자신의 방 앞에 도착하자 그가 말했다.'“서울에서 볼 수 있을까요?”'눈앞엔 은색으로 빛나는 광택 어린 손잡이가 있었다. 그가 건넨 말에 대답을 하고 이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은수는 손잡이 손을 가져가지 못하고 길 잃은 아이처럼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남자는 호감을 표시하며 연애를 하자고 제안한다. 강에 들어가지 말라는 걱정 어리면서도 진지한 부탁을 하며. 그녀가 고개를 올려 옆에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를 마주 보았다. 은수의 눈빛이 애잔해졌다. 지나가는 강아지라도 그녀 옆에 다가오면 그 작은 다가옴에 매달려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어 그냥 모르는 누군가에게라도 미친년처럼 수다를 떨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들. 담배를 사며, 옷을 사며, 쓰레기봉투를 사며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꿋꿋하게 돌아서 나오며 스산한 바람을 잔뜩 어깨에 이고 길을 걸었다. 지금, 지금이 그랬다. 선명하게 마음속의 소용돌이를 느끼며 그녀가 눈앞에 있는 도준을 응시했다. 그러나 이런 만남은, 이런 시작은 가망이 없다.'그녀가 대답 없이 고개를 돌리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문을 닫은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공간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숨통을 끊어올 것 같은 무거운 정적이 감돌아 그녀가 급히 숨을 들이켰다. 시야 가득 빈 공간이 가슴속을 파고들더니 가슴을 뚫고 터지려 했다. 미세한 기척조차 없는 적막, 숨통이 조여 왔다.'‘나는 버려졌다.’'피할 수 없는 진실이 그녀 내부로 가차 없이 파고들어 와 굵은 손아귀가 그녀의 가슴을 죄었다. 그녀가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눈을 감았다. 적막을 견딜 수 없었다. 내부의 소리를 직면할 수도 견딜 수도 없었다. 그녀가 퍼뜩 감은 눈을 뜨곤 다시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은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가 문 앞에 여전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는지 비스듬히 옆으로 서서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쁜 숨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러나 방금 전 그녀를 휩쓸고 지나간 진실이 그녀의 밑바닥에 남아 밖으로 치고 올라오려고 했다. 그녀가 무언가에서 도망치듯 급하게 손을 뻗어 도준의 목에 팔을 감았다. 순간 미동 없이 바위처럼 서 있던 그가 품 안으로 들어오는 은수를 두 팔로 꽉 껴안았다. 그가 그녀의 뒷머리를 손으로 강하게 감싸더니 거칠고도 깊은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거부할 수 없다.’'‘차마 떨칠 수 없다.’'두 사람의 입술이 거칠게 마주쳤다. 그는 그녀를 안은 두 팔에 더 힘을 주었다. 그리곤 거침없이 그녀의 부드러운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이 여잔 스쳐 지나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