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준혁아.”'헉헉거리며 덜렁이 화은이 준혁의 넓은 보폭을 열심히 따라잡으려고 뛰고 있었다. 준혁은 뒤로 쳐다보지 않아도 훤히 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라고는 뒤에서 1등만 하던 화은은 항상 준혁을 보면 뛰기부터 했다. 준혁은 화은이 잘 따라 붙으라고 약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준혁의 어깨에 손을 떡하니 올리는 화은을 곁눈질로 보면서 준혁이 말했다.'“오늘은 늦잠 안 잤냐?”'“너 왜 나 안 깨우고 그냥 가냐?”'“웬일로 어제 늦게까지 불이 켜 있어서 오늘 좀 늦게까지 주무시나 했지.”'“넌 내가 학생주임한테 잡혀서 벌서는 거 보는 게 취미지? 어떻게 옆집에 살면서 깨우기만 하고 그냥 가냐? 그건 무슨 심보야? 같이 학교 가자고 해주면 큰일 나냐? 그러면 깨우기는 왜 깨워? 아침부터 니 목소리 들으면 우울해 지는 거 모르지? 내가 너랑 같이 다니면 째려보는 눈들이 많은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우리가 같이한 세월이 얼마인줄 알아? 내가 널 친구라고 생각하고 산 세월이 아깝다. 내가 매일 느끼는 거지만 우리관계도 이제 이쯤에서 접자, 접어.”'화은은 준혁을 볼 때 마다 속이 상했다. 같은 동네에서 붙어 산지가 어언 20년이 다 되 가건만 한 번도 화은을 챙기지도 않았고, 혼자만 잘난 척, 멋진 척, 똑똑한 척 다하고 다니고, 물론 전교1등을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수재에, 집안 빵빵하고, 잘생긴 건 인정하지만, 그런 놈을 혼자서 좋아한 세월이 너무나 아까웠다.'준혁은 준혁 나름대로 이렇게 자신한테 대접 못 받아 푸념하는 화은을 보는 게 이제는 약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자신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얼굴로 쫑알대는 화은을 보면 자신의 진심을 언제쯤 말해줘야 되나 싶어 한숨부터 나왔다.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던 어느 여름 날 옆집으로 이사 온 커다란 두 눈에 항상 이슬을 머금은 듯한 촉촉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화은에게 첫눈에 반한 뒤로 화은을 멀리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화은과 같은 동네에 그것도 옆집에 산다는 것 자체를 비밀로 했었다. 자신은 항상 누구에게나 주목받고 있고, 질투의 대상이 되어 있기 때문에 화은을 좋아한다고 하면 화은이 다칠까 싶어서 현재까지는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는 중이다. 준혁의 타는 속을 알지도 못하는 저 덜렁이가 얄미운 소리하는 것까지도 때로는 예쁘게만 보였다. 대학만 들어가면 지금까지 알아도 모른 척, 한동네 살아도 같은 동네 안 사는 척 그렇게 안하리라 맘먹고 있는데 저 덜렁이는 대학이나 갈지 모르겠다.'“철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대학 떨어지면 그땐 정말 우린 오랜 친구 관계고 뭐고 없어. 알았어?”'준혁은 화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를 해놓고는 멀찌감치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학교부근만 오면 준혁은 자신을 아는 척도 안하는 걸 알지만 때론 그게 너무 서운할 때가 있다. 교문입구에서 단짝친구인 민정이를 만났다.'“화은아…… 오늘은 지각 안 했네?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내가 만날 늦으라는 법 있니?”'“너 우준혁 방금 들어가는 거 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