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이 첫 번째 단추를 푸르고 셔츠를 펄럭이는 것을 지켜보던 수현은 시선을 그의 머리 위에 옮겼다. 아카시아 꽃잎이 붙어 있었다. 수현은 손을 뻗어 지석의 머리를 털어내었다. 수현의 행동에 지석의 몸이 경직되었다. 지석이 경직되어 버리자 수현도 머리를 털다 말고는 재빨리 손을 내렸다. 둘의 사이엔 긴 침묵이 돌았다. 수현은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였다. 지석도 멍하니 학교 건물을 응시하다가 갑자기 몸을 확 일으켰다. 수현은 잠시 놀라 움찔거렸지만 여전히 모래 바닥만 바라보았다.'“선생님.”'“응?”'“선생님…….”'“……왜.”'“아니에요.”'미적지근한 바람이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운동장 한가운데엔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알리듯 벌써부터 익어 버린 아지랑이가 올라왔고 아카시아 꽃잎은 계속해서 눈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수현은 침묵을 유지하다가 손을 뻗어 자신의 카디건에 있는 카네이션을 매만지다가 떼어냈다.'“이 꽃 고마워.”'“…….”'“핀도 고맙고.”'“…….”'“선생 하길 정말 잘 했다.”'수현의 말에 침묵을 유지하던 지석은 고개를 돌려 수현을 바라보다가 벤치 위로 올라섰다. 수현은 갑작스러운 지석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고개를 올려 지석을 응시했다. 뒤에 있던 아카시아 나무에서 나뭇가지를 잡고는 머뭇거리던 지석은 가지를 꺾어냈다. 꽃잎들 사이로 햇빛이 지석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지석의 얼굴은 미묘한 표정이었다. 지석에게서 잠시 망설이는 눈빛이 보였다. 지석은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뻐끔뻐끔 거리더니 곧 단단해진 눈동자로 변했다.'“선생님.”'“응?”'“전 복학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랑 누나가 원하던 일이니까.”'“…….”'“근데, 요즘은 왠지 모르게 자꾸 후회가 되요. 제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거짓말이에요. 사실은 이유를 너무 잘 알아 버려서 미칠 거 같아요.”'지석은 손에 아카시아 꽃 나뭇가지를 잡고는 벤치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벤치에 앉아서 흔들리는 눈으로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수현과 눈을 마주했다.'“무섭죠? 저도 무서워요.”'“…….”'“언제부턴지 모르겠어요. 그냥 무서워. 카페에서 처음 말 걸었을 때인지 학교에서 다시 당신과 마주칠 때인지.”'“지석……아.”'“받아요. 선생님.”'지석은 수현에게 나뭇가지를 내밀었다. '“언제부터 들어왔어요? 난 내 마음 열어 둔 적도 없는데…….”'“…….”'“받아주세요.”'“…….”'당황한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하는 수현을 보자 지석은 애써 웃음을 짓고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에 나뭇가지를 건네주었다.'“그거 꽃말 숨겨진 사랑이라고 했죠?”'“…….”'“걱정 마요. 남들 모르게 숨길 테니깐…….”'“미안하다.”'“…….”'“나 가볼게. 강운이랑 현우한테 나중에 보자고 전해 줘.”'수현이 허둥거리며 교문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석은 벤치에 다시 주저앉았다. 수현이 떨어트렸는지 눈앞에 보이는 카네이션을 보며 지석은 얼굴을 찌푸렸다.'“왜…….”'왜 당신의 얼굴을 보면 아픈지, 아프면서까지 왜 자꾸 보고 싶고 웃음이 나는지. 왜 점점 숨길 수 없게 만들어 자신을 미치게 하는지 그는 알고 싶었다.'“퉁퉁 불어 버린 떡볶이랑 튀김인데 먹을래요?”'지석의 눈앞에서 검은 봉투를 내미는 태형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카시아 향기로 꽉 차 있던 지석의 코에 기름 냄새가 배어 들어왔다.'“언제부터 숨어 있었어?”'“머리 털 때부터.”'“빨리 나오지.”'“고백한 거 후회해요?”'“…….”'“걱정 마요. 형은 절대 후회 안 할 테니깐.”'태형의 의미심장한 말에 지석은 쓴웃음을 지었다.'“위로해 주는 거냐.”'“아니요. 미리 축하해 주는 겁니다. 내가 장담하는 데 형은 이룰 수 있어요.”'“위로겠지만 듣기 좋다. 그 말.”'지석은 태형의 말을 위로로 삼고 주머니 안에서 꺼져 있던 MP3를 다시 켰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볼륨을 높였다. 모래 위로 떨어진 붉은 카네이션 꽃을 멍하니 응시하던 지석은 일어서며 태형에게 장소를 옮기자고 말을 했다. 태형을 알겠다며 대답을 하곤 휴대폰을 꺼내 학교로 오기로 한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사라진 뒤 모래 위로 처참하게 짓밟혀 버린 카네이션이 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