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불러! 한강이 다리를 다쳤어! 빨리!”'다급한 그의 음성에 놀란 상대방이 뭐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지만 미카엘은 전화를 이내 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는 그녀의 다리가 놓인 침대 가에 털썩 주저앉아 상태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가운 얼음주머니를 챙겨든 메이드와 강지호가 달려 왔을 때에도 그는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주치의가 단순한 골절이 아니라 근육이완이라고 말하며 냉찜질을 계속하라고 지시하고 가벼운 진통제를 주고 가버린 후에도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윽고 밀물이 밀려 왔다 빠져 나가 버린 것처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라진 방 안에 그와 한강 단둘만이 있을 뿐이었다.'“나……괜찮아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아니. 내가 미안해! 막을 수 있었는데, 당신이 당신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했을 때 돌아섰더라면 당신이 이런 사고를 당하게 두지 않았을 텐데. 만약 순간적으로 계단 난간을 잡지 못했더라면 그 긴 계단을 끝없이 굴렀을 거야. 그랬더라면…….”'“아뇨.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가지고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아냐…….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어. 미안해.”'“그러지 말고 잠깐 나 좀 봐요. 이리 와서 내 얼굴 보면서 우리 얘기 좀 해요.”'미카엘은 그제야 자신이 그녀 앞에 렌즈도 착용하지 않은 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머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사태를 알아채고 돌아앉았다. 그러나 미카엘도 알고 있었다. 숨기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는 것을.'“놀랐겠군!”'“조금요.”'“내 비밀을 알고 싶다고 했었지? 이게 내 비밀이야. 태어날 때부터 난, 홍채 이색 증이었어. 흔히들 오드 아이라고 하지. 동양인인 당신 눈에는 꽤 쇼크였을 거야.”'“예. 순간 좀 놀라기는 했어요.”'그녀다운 말이었다.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고 놀랐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순간 미카엘은 그녀가 자신의 모습에 놀란 정도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걱정이 되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런데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신은 당신만 이렇게 사랑하신 걸까요? 아름다운 두 눈을 주신 신께 감사해 하며 살아야 해요. 당신 고모가 당신 모습을 묘사하면서 천사 같다고 하시더니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그녀의 말은 어떤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려움도 없었다. 오로지 진실로 아름다움에 대해 경배하고 있었다.'“무섭지 않아?”'“왜? 왜 무서워야 하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무서워하던가요?”'“응.”'꽤 상처 받았던 듯 건조한 음성으로 말하는 그에게 그녀는 손을 뻗어 그를 불렀다.'“이리 와보세요. 가까이서 당신 얼굴을 한번만 더 볼 수 있게 해줘요! 부탁이에요.”'“…….”'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그는 그녀 앞에 다가가 앉았다.'“왜 이렇게 아름다운 눈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숨기고 살고 싶어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당신이 어둠을 고집했던 이유가 고작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요?”'“그래. 그런데 오드아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야. 난 홍채 색깔이 다른 이유때문인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능력이 있어. 한쪽 눈은 현재를, 또 다른 한쪽 눈은 5초 뒤의 미래를 봐. 그래서 어떤 일들을 미리 본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들은 날 두려워하며 피하기 시작하더군.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의 짧은 미래를 보는 것이 두려웠었어. 그래서 어둠속으로 숨어 들 수밖에 없었어.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들을 직접 보지 않으면 내 눈에 그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까. 내 홍채에 맺히는 상의 시간차이가 미래를 보게 하니까. 좀 전에 당신을 보지 않고 돌아서 있었기에 5초 뒤, 당신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거야! 만약 당신 말대로 당신을 보고 얘기를 나눴더라면 미연에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테지.”'“굉장하군요! 5초 뒤의 미래라…… 당신 곁에 있으면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일은 없겠군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왜 죄인처럼 어둠속에 살며 그 능력을 사장시키고 있는 거예요? 이해할 수 없군요. 단 5초 뒤의 미래라도 그 능력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그럴 때도 있지만 내 힘으로는 불가능해서 결국 내가 아는 누군가가, 혹은 내 눈에 비친 누군가가 처절히 죽어가는 모습을 5초 먼저, 그리고 5초 후에 이렇게 두 번을 보게 된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거든…….”'“그럴……수도 있겠네요. 그래서…….”'“어머! 한강 씨 대단한 사람이군요! 미카엘을 결국 방밖으로 이끌어 내었네요. 축하해요! 물론 저 아이가 그렇게 숨기고자 했던 이상한 눈들도 보았겠군요!”'그와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그의 아픔을 이해해가기 시작하던 한강은 원하지 않았던 침입자의 출현에 놀라 불편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불편한 표정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불쑥 문을 열고 들어 온 마가렛은 활짝 웃으며 한강과 미카엘을 보며 서슴없이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한강은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자신의 아들인 미카엘에게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조차 모르는 무신경함이 그녀를 증오하게 만들었다.'“마가렛!”'“어머! 한강 씨! 그럴 필요 없어요. 저 아이도 우리가 무슨 내기를 했는지 이제 알 텐데. 자, 내가 약속했던 저 아이 비밀은 이미 알았을 테니 되었고, 남은 것은 아! 그렇군요. 내일아침 약속대로 칼과 사라져 줄게요. 그럼 우리 내기는 여기서 게임오버인가요? 재미있었어요. 덕분에 마지막 이 하루는 긴장감 있는 날이 되었네요. 고마워요! 그리고 얘! 미카엘! 이제 그만 렌즈 좀 끼어 주면 안 되니? 사람들에게 너의 그 불완전한 모습을 그렇게 보여주고 있고 싶니? 신이 너에게 내린 저주를 알게 해서 좋을 게 뭐 있다고. 한강 씨가 놀라잖아!”'사악한 미소를 띤 그녀와 미카엘의 슬픔이 가득한 눈빛이 자신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강은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무신경하고 사악한 어머니를 비난할 수도, 그렇다고 그에게 자신의 생각이 그런 의도가 아님을 말할 수도 없었다. 물기 가득한 그의 두 눈이 자신을 바라본 그 순간 이미 한강은 도망치고 싶었다. '자신이 그를 이미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 남자 미카엘을,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로부터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처를 받아 피를 철철 흘리며 서 있는 그를, 그럼에도 그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고 아니라고 속삭여 줄 수 없는 자신이 그를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