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진성의 기분은 최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그가 전학 왔다는 것을 전교가 떠들썩하게 알렸다. 평소 같으면 원수같이 여기던 기자단도 일부러 끌어들이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여학생들은 무조건 발로 꾸아악 밟아주던 것도, 어제만큼은 참았다. ' 아니, 오히려 여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위해 그의 잘빠진 외모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폼이란 폼은 다 잡았다. 최대한 멋있어 보이려고 여자들이 뽕 간다고 떠들어대던, 생각에 잠긴 듯 우수에 찬 표정도 지어줬고, 가끔 입가에 살인적일 만큼 매력적인 미소도 지어 보였다. 오직 안연수의 귀에 그의 멋진 모습이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그런데 당연히 그가 전학 왔다는 것을 들었을 안연수는 며칠이 지나도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다. 찾아와도 몇 번은 찾아 왔어야 할 연수가 감감 무소식이니 조용히 연수가 먼저 오길 기다리겠다던 처음의 생각은 온데간대 없이 사라졌다. 인내심이 완전 바닥났던 것이다.' 결국 진성은 연수를 끌어 들이기 위해 오늘 아침부터 화끈한 쇼를 벌렸다. 이 학교의 짱이란 놈과 피터지게 한판 뜬 것이다. 하지만 학년주임선생과 교감에, 교장에, 모두 다 나와서 싸움을 뜯어 말리느라 난리굿을 떠는데도 안연수만이 오지 않는 것이다. 오직 안연수만을 위해 벌인 쇼인데!' “차진성 군 곤란해. 이러면 정말 곤란해. 오늘은 자네 아버님을 봐서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는 절대 그냥 넘어 갈 수 없네!”' 교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진성은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교장은 그냥 넘어 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후지디 후진 이 별 볼일 없는 사립 고등학교를 그가 무사히 졸업만 해도 아버지께서 거액을 기부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개인적으로 매달 기부하기로 한 기부금의 액수도 적지 않다. 그러니 어찌 그냥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진성은 교장의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 오직 지금 진성의 머릿속에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연수가 왜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뿐이었다. 정말이지 연수만 아니라면 이런 학교 다녀달라고 무릎 꿇고 빌어도 발끝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 오직 요리저리 미꾸라지처럼 피하는 연수를 잡기 위해 후지디 후진 이 학교의 학생이 된 그다. ' 그런데 문제는 이 후지디 후진 학교로 편입한 며칠이 지나도록 연수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구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요 며칠 진성은 수업시간에라도 혹여 마주칠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1학년 수업을 맡고 있는 연수는 3학년 교실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그는 교무실에도 찾아갔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진성이 갈 때마다 연수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새버렸는지 얼굴 한번 마주칠 수 없었다.' ‘차라리 수업시간에 그냥 들이닥쳐 버려? 선생이니 수업은 해야 할 것이고 수업 중에 들이닥치면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거 아냐?’' 그런 생각만 하고 있는 진성에게 교장은 긴 설교를 침을 튀기며 해대었다. 그러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그에게 교장의 설교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아니, 교장의 길고 지루한 설교가 끝나자 반성은커녕 수업에 들어갈 생각도 않고 연수를 찾아 나서는 불량학생 진성이었다. ' “1학년 3반 수업이 국사랬지?”' 진성은 발걸음도 가볍게 1학년 3반 교실로 향했다.'' ***'' 연수는 이가 갈렸다. 어떻게 된 놈이 수업시간에 갑자기 쳐들어 와서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눈앞에 있는 놈의 잘난 면상을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판이었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성은 최대한 애교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하지만 연수는 진성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한국 근대사 도표를 칠판에 써내려갔다.' 진성은 계속 그를 무시하는 연수를 화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수업을 방해한 것이 미안해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미안한 듯 웃어보였다. 그런데 연수는 그런 그를 무심한 표정으로 한 번 훑어보고는 하얀 백묵으로 칠판에 쓰던 것을 계속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닌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그를 완전 투명인간 취급하며.' 하지만 학생들은 침을 삼키며 그의 표정하나, 손끝 움직임하나 놓치지 않고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작게 술렁이며 그의 멋진 모습에 감탄했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감탄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안연수 단 한 사람의 관심이기에. ' 이제 진성은 연수의 무시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성큼성큼 다가가서 백묵을 잡고 뭔가를 써내려가고 있는 연수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뭐, 뭐야?”' 말을 더듬으며 묻는 연수의 표정에 당황이 어려 있었다. 그의 손을 뿌리치려 애쓰는 연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맑고 깊은 안연수의 눈동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며칠 동안 안절부절못하던 마음은 진정 되었다. ' 진성은 왠지 기분이 좋아져 한쪽 입 끝을 끌어 올리고 씨익 웃었다. 그런 그의 웃음을 비웃음으로 착각하며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연수의 속내는 전혀 모른 채.' “이거 놔. 수업중이야.”' 연수는 속으로 이를 갈며 다른 학생들이 들을세라 낮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진성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진성은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무조건 교실 밖으로 향하는 출입문 쪽으로 끌고 갔다. ' 연수는 진성의 힘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격렬하게 저항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진성과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 어떤 소문이 퍼질지 두려워서 저항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교실 문밖으로 나와 진성이 교실 문을 닫자마자 진성의 정강이를 발로 차 주었다.' “앗!”' 진성이 아픈지 펄쩍 뛰며 움켜잡고 있던 연수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수업 중에 이게 무슨 짓이야?”' 연수는 잔뜩 화난 얼굴로 혹여 귀를 곤두세우고 있을 교실 안 학생들이 들을세라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수업이 그렇게 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