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찰칵, 찰칵.'펑! 펑!'[여기요, 여기! 선우진 씨, 콜튼 와이즈먼 씨, 이쪽 좀 봐주세요!]'[아, 왜 이렇게 밀고 난리야! 질서 좀 지킵시다, 질서를!]'[선우진 씨, 실종된 지 9개월 만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오셨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소감 한마디 말해 주시죠!]'[옆에 계신 콜튼 와이즈먼 씨 덕분으로 목숨을 구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동안 어디에 계셨던 거죠?]'[무인도에 표류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럼, 콜튼 씨는 혼자 그 섬에 살고 계셨던 겁니까?]'[도대체 그 섬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고 직후 3개월 동안 HBC 방송국과 가족들이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쳤는데도 찾지 못했다고 하던데 왜 찾지 못했던 거죠?]'[선우진 씨! 콜튼 와이즈먼 씨! 이쪽을 보고 좀 웃어 주세요!]'정신이 하나도 없다.'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고함을 치며 모래알처럼 몰려든 엄청난 수의 사람들.'사방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아찔한 불빛들.'모든 것이 낯설고 충격적이다. 특히 사방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불빛은 충격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눈이 부셔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자칫하면 눈이 멀 것 같다. 어디서, 어떻게 저런 불빛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걸까. 불은 분명히 아닌데…….'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두렵다. 잘게 부서진 태양이 눈부시게 터질 때마다 내 몸은 흠칫흠칫, 떨린다.'나는 여자와 함께 검은색 옷을 입은 십여 명의 건장한 남자들과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흥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다. 나는 여자를 옆구리에 바짝 끌어안고 사방을 경계한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 다르게 여자의 얼굴은 흥분과 기쁨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상기된 여자의 얼굴에서는 한시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저런 여자의 모습은 처음 본다. 낯설다. 여자는 내 품에 안겨서도 뒤따라오는 그녀의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는다.'이곳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이상한 곳이다. 8일간 바다를 헤매다 3일 전에 극적으로 도착했던 섬과도 완전히 다르다. 이곳은 공기, 바람, 온도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숲은 고사하고 나무나 흙, 바다조차 없다. 사방은 온통 크고 작은 공간에 막혀 있고 그 공간은 엄청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그 8일간의 시간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두려운 시간이었다. 때맞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바다 한가운데서 속수무책으로 여자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리사를 데리고 섬을 떠났다면 십중팔구 리사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8일이었다.'리사……. 불현듯 리사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걱정되고 궁금하다.'녀석, 아직도 울고 있을까?'아니면 저 혼자 버려두고 갔다고 아직도 화가 나 있을까?'지금까지 백사장을 헤매고 있으면 어떡하지?'대장 원숭이가 잘 보살필 거라고 믿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미를 잃은 후로 한 번도 내 곁에서 멀리 떠나 본 적이 없는 녀석이 아닌가.'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출발하기 하루 전날 리사를 피치 섬에 두고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바다를 헤매게 될지, 어떠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내 욕심만 차리자고 리사를 데리고 떠날 수는 없었다.'성격이 급하고 극성맞은 녀석이라 좁은 뗏목 위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뗏목에 실을 수 있는 과일과 물이 한계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만약 녀석이 배고픔과 갈증을 버텨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만 있었어도 나는 어쩌면 무리를 해서라도 리사를 뗏목에 태웠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뗏목이 뒤집힐 수도 있을 터였다.'그렇게 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는 그런 위험을 자초할 수 없었다. 만약의 경우라 할지라도 여자를, 리사를 그런 위험한 상황으로 끌고 갈 수 없었다.'그런데 눈치 빠른 녀석이 뭔가 눈치를 챘는지 떠나는 날,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리사, 너 왜 그래? 친구들한테 놀러가지도 않고 옆에 찰싹 붙어서는. 나 지금 무지 바쁘거든? 너랑 놀아 줄 시간 없어.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가서 좀 놀아라. 엉!”'달래 보기도 하고 으름장도 질러 봤지만 녀석은 낑낑거리며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그러다 대장 원숭이가 리사를 억지로 끌고 원숭이 무리로 놀러간 틈을 타서 뗏목을 띄웠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리사와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떼었다.'‘미안하다, 리사. 이렇게 떠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 ……사랑한다.’'나는 그렇게 내 세상의 전부이자 사랑하는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피치 섬과 여동생처럼 사랑하던 리사를 떠났다.'다행히 항해를 하는 동안 바다는 잠잠했다. 그러나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에서는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푸른 파도만 넘실댈 뿐이었다. 만약 항해하는 방법과 항로를 찾아가는 방법을 세세하게 적어 놓은 아버지의 노트가 없었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나는 아버지의 노트와 나침반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노를 저었다. '“콜튼,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요?”'“응, 아마도.”'사실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불안해하는 여자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가 적어 놓으신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가급적 물을 마시지 않았다. 타는 듯한 갈증을 정 참을 수 없을 때에만 한두 모금으로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럼에도 나는 수시로 물을 마시는 척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여자가 물을 마시기 때문이었다. '“진, 목마르지 않아? 물 마신 지 한참된 것 같은데.”'“그래요? 자, 여기요.”'내가 목이 마르다고 하면 여자는 지쳐 쓰러져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물통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면 나는 가급적 물이 입술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물 마시는 시늉을 했다.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자, 진도 마셔.”'“괜찮아요. 난 목 안 말라요.”'“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