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울음소리가 흔하지 않은 동네였다. 높은 대문을 넘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동네에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여기서 그치면 저기서 울고 저기서 그치면 여기서 우는데 동네사람들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참고 견디는 것은 저 주인집 남자가 꽤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게 된 것도 딱 한 달 차이었다.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 참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가 없었다. 4살쯤 되는 남자아이는 집 기둥에 기댄 채, 투덜대며 운동화로 땅을 찼다. 입술은 쀼루퉁한 것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 듯 했다.'“하원아, 오늘은 왜 나와 있어?”'“동생이 싫어요! 난 하진이도 싫고 혜인이도 싫어요!”'“어머, 그렇게 예쁜 동생들이 싫으니?”'“네! 너무 싫어요!”'옆집 아줌마는 입을 가리고 살며시 웃었다. 유일한 어린애였던 하원은 이제 어른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다는 것에 심통이 나있는 듯했다. 갓난아기가 둘이나 태어났기에 하원은 찬밥신세였다. '“우르르, 까꿍! 우리 나중에 사돈 맺으면 되겠어요.”'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젖을 먹이며 말했다. 갓난아기라 그런지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다. 헌데 여자가 안고 있는 남자아이는 눈도 또렷하고 코도 오뚝하게 솟은 것이 고거 참, 커서 여자깨나 울릴 관상이었다. 거기다 방긋방긋 웃는 것이 주위 사랑 좀 받을 것같이 보였다. 아기란 다 예쁘지만 울고 짜고 징징대면 아무리 예쁜 아기도 조금은 싫어지는 법이었다. '“우리야 좋죠. 그렇지? 혜인아?”'혜인의 엄마는 아이를 번쩍 안아들며 어르고 달랬다. 웃음이 많은 혜인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방싯거렸다.'“좋다고? 말을 다 알아듣네.”'아기의 작은 손이 꼬물거리며 옆에 있는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어머, 이것 봐요! 여보! 카메라, 카메라!”'연방 카메라를 외쳐대며 하원의 엄마는 바쁘게 움직였다. 하진의 손에 꽉 잡힌 작은 손이 제 뜻대로 되지 않자 혜인이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에 혜인이 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어른들은 아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끼리 신이 나 웃고 있었다. 혜인이 울고 하진은 방싯거리며 작은 손을 꽉 잡고 있는 사진이 가족사진 자리에 떡 하니 자리 잡았다. 그것이 생후 2개월 때의 이야기였다. ''꽃피는 봄이 되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조금씩 입을 벌리며 따스한 햇살을 한껏 받았다. 공기 중에는 향긋한 꽃냄새가 가득했다. 돌담 높은 담장 위로 각자의 집에서 떠들어대는 소란스러움이 가득 들렸다. '“악! 왜, 내가 저 놈하고! 싫어. 싫어!”'혜인은 장판 위에 널브러져 발을 동동 굴렀다. 자신이 저놈과 떨어지기 위해 얼마나 갖은 노력을 했던가. 이제는 고등학교마저도 선택할 길이 없어졌다. 저놈과 엮이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혜인아, 학교 가야지.”'하진은 상큼한 미소를 입가에 방싯 달고 혜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미소는 봄날햇살보다 더 따스한데 손목이 조금씩 아려왔다. 안경은 이미 코끝으로 내려온 혜인은 코를 훌쩍거리며 하진을 노려봤다. 오늘도 저 잘나신 얼굴은 반듯하게 자리 잡혔다. '“혜인이 데리러 왔구나.”'“네, 혜인아 얼른 가자.”'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는 하진을 보는 엄마의 눈빛이 참 따스했다. 혜인은 자신의 답답한 속을 아무도 몰라주는 통에 애꿎은 가슴만 쳐댔다. 이 억울함을 풀 수가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고등학교 생활을 꿈꿔왔던가. 친구와 알콩달콩 손도 잡고, 같이 하교하고, 등교하는 꿈을……. 그 찬란했던 꿈들이 유리조각처럼 와장창 깨어졌다. 그 허탈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혜인은 휴지로 코를 흥 풀었다. 흐트러진 두터운 뿔테를 다시 제자리로 올려놓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재정돈 했다. 그리고 펑퍼짐한 교복치마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아침부터 생떼를 피우느라 흐트러진 자줏빛 리본도 곱게 묶었다. '“나랑 학교에서 알은 체 하면 죽을 줄 알아!”'하진이 따라오기 전에 혜인은 서둘러 가방을 메고 문을 쾅 닫았다. 발에 모터라도 단 듯 정원위로 뛰어다니는 발걸음이 꽤나 급박해보였다. 심장이 덜덜 떨리고 손안에 땀이 가득 배어 나왔다. 제발 유하진이 오늘은 날뛰지 않기를 깊이 바라 본다.'하진은 얼떨떨하게 서있는 혜인의 엄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저, 저놈의 계집애 말하는 것 좀 봐! 하진아, 내가 다 미안하다.”'“아니에요. 괜찮아요. 혜인이가 저 싫어하는 게 하루 이틀인가요.”'하진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자신도 가방을 멨다. '“에휴, 그래도 우리 혜인이 잘 부탁해.”'“네, 걱정 마세요.”'하진은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빙긋이 지어보였다. 그 모습에 혜인의 엄마는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 웃음을 터트렸다. 어쩜 저리 듬직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학생회장 어느 것 하나 빼먹은 적 없는 그가 얼마나 더 믿음직하랴. 툭하면 짜증만 부리는 외동딸만 보다가 싹싹한 하진을 보며 혜인의 엄마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혜인이 하진의 반만 따라가도 여한이 없을 정도였다. 혜인은 숫기도 없어 변변한 친구 한 명 없는 것이 특히 걱정이었다. 어려서는 곧잘 데려오더니 이제는 하진뿐이었다. 특히 낯선 환경 속에서 하진과 같은 학교라니 그녀는 무척 안심이 되었다. '“아줌마, 저 이만 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