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를 맞이한 지우엄마와 지석의 얼굴은 놀라움에 굳어졌다. 한사코 괜찮다고 그냥 앉으라고 하는 지우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하는 넙죽 절부터 했다.' “아니. 그냥 안하셔도 된다니까요.”' 지우의 엄마는 어절 수 없이 같이 맞절로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난처함을 감출 수 없는 얼굴이다. 지우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런 사람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다시금 옛날의 일이 반복이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지레 앞서는 걱정에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낯빛이 좋지 못했다.' “어머님. 말씀 놓으십시오. 조금 더 일찍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이제야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쓸데없이 손만 많은 가는 일이라 이렇게 되었네요.”' “쓸데없이 라니요…….” '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지우를 쳐다보았다. SH그룹의 전무이사의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동하를 엄마 옆에 앉아서 지석이 말없이 바라보았다. 지석의 표정도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족의 표정을 바라보는 지우의 마음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 자신이야 당사자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 죄였다고 하지만 엄마와 지석은 오로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힘든 세월을 보냈었기에 그들을 다시 걱정으로 몰아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미안함마저 들었다. 재현으로도 힘들었던 가족 앞에 재현보다 더 큰 산 같은 동하를 데려다 놓고 있는 것이었다. 동하를 보며 가족들이 느낄 두려움과 불안감을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자신이 흔들린다면 더 힘들어질 사람들이 가족이었다. ' “엄마. 그냥 편하게 해. 괜찮아.”' “아니. 그래도 어떻게…….” ' “누나! 괜찮겠어?” ' 옆에 있던 지석이 참다못해 지우에게 물었다. 지석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지석아, 누나. 같은 실수 두 번 하지는 않을 거야. 걱정 마.”' 지석이 누나의 눈에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보았는지 눈가에 힘이 풀어졌다. 전처럼 그렇게 맥없이 힘없이 무너지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해 보아도 여전히 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우나 자신들은 그저 힘없고 뒷배 없는 서민이기에 당해야 하는 고통이 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도 그동안은 죽은 사람처럼 살던 누나가 전처럼 살아있는 생기로 자신에게 자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석은 걱정은 되지만 가족이니까 믿어줘야 한다고 힘이 되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 두 남매의 대화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동하의 마음이 안타깝다. 지우가 말은 다 하지 않았어도 집안의 반대로 인한 고통이 지우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동하도 알 수 있었다. 왜 그렇게 지우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기 힘들어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직도 불안함이 가득한 지우 엄마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투박한 손이지만 따뜻한 그 손을 잡고 동하가 말했다. ' “어머님. 지우 아프지 않게 힘들지 않게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동하가 잡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 졌다. 눈물을 참으려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자신의 거친 손으로는 지우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지만 힘든 일이라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 분명한 곱디고운 손을 가진 이 남자는 지우의 손도 그의 것처럼 곱게 지켜 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걱정은 되지만 지우가 괜찮다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날 밤새 잠 못 이뤄하다 새벽녘 부단히 이 남자를 향해 집을 나서던 지우를 기억해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두 사람 마음이 같다면 나는, 나는 괜찮아요. 두 사람 마음이 중요한 거지. 내 허락이 무에 그리 중요하겠나.”'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애쓰는데 자꾸만 눈가가 젖어 온다. 힘들게만 하고 낳아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 그래서 그런 부모를 둔 죄로 자신의 딸이 겪었던 옛날의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앞을 가리는 것이다. ' “아닙니다. 우리 지우 예쁘게 낳아서 여태 키워 주셨는데 당연히 허락이 필요하죠. 제가 나쁜 놈이라는 거 압니다. 어머님. 지우 달라고 청하기에도 부족한 것도 알고요. 상처도 있는 놈이 염치가 없다는 것 알지만 지우 사랑합니다. 지우 제게 주십시오.”' 동하의 얼굴에서 보이는 강인함 때문일까 이 사람은 믿어도 좋을 것 같이 느껴진다. 이 사람이라면 자신의 딸을 귀히 여기고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가슴속에서 올라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은 것처럼 살던 자신의 딸이 선택을 해온 사람이었다. 지우의 엄마가 동하의 손을 두드려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 “이미 주고 말고가 없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전에 누나 선보는 자리에 찾아 오셨다는 분이 전무님 맞지요?” ' 지석이 엄마의 표정을 보더니 씩 웃으며 동하에게 물었다. ' “맞아. 나였어. 그런데 매형이라고 불러 주면 안 되겠나?” ' 동하의 말에 지석의 얼굴에 어이없는 웃음이 올랐다. ' “매형이라 불러 달라고요? 허락을 구하러 오신 첫날에 대번 매형이라고 부르라니 배짱이 두둑하신건가요? 아니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신 건가요?” ' “둘 다.”' 동하의 말에 지석이 무언의 물음을 묻는 눈빛을 보냈다. ' “여태까지 난 내가 원하는 것이나 일에서 뒤로 물러 본적도 없었고 못 얻어 냈던 적도 없어. 그런 경험이 내 배짱을 키워 줬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우를 사랑하는 가족을 믿기 때문이지. 지우가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가족들이 모르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자신이 있어.”' 동하의 표정과 말에서 지석이 안심을 했는지 지우를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동하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 때문에 다리가 저려 오고 있었다. 이마에 식은땀까지 올라오려고 하고 있었다. 지석이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 “매형이 뭔가 더 잘못한 게 있나보네. 그만하라는데도 무릎을 계속 꿇고 있는 걸 보니 땀까지 흘려가며…….” ' 지석의 말을 듣고 보니 동하의 얼굴표정이 이상한 것을 지우가 알아챘다. 좌식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동하가 맨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있었으니 지금 상황을 말해 뭐하겠는가. ' “동하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