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사람이 죽는다.''모두가 달려와 붉게 물들어 가는 침대 가까이에서 충격 받은 얼굴로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달려와 고작 하는 짓은 놀랐다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거나, 욱─하는 비릿한 피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이 죽은 사람과 나를 번갈아서 본다. 그리고 욕을 한다.''─ 독한 것 좀 봐. 지 어미가 죽었다는데 표정 하나 안 변하네.''─ 충격 받아서 그런 거 아니야?''─ 원래 그런 애라던데.''─ 너무 하네. 그래도 엄마인데.''수다스런 사람들 틈으로 아버지가 달려왔다. 울고 있다. 통곡이다. 처음으로 슬퍼하는 사람이 나타나 준 것이다. 저 남자는 왜 슬픈 것일까? 이제야 왜 슬프다고 요란하게 우는 것일까. 이해를 할 수 없다. 고작 11살인 나를 끌어안으며 이 남자는 너무도 슬피 울고 있다.''토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중성이 내 눈에 보여, 그 역함이 나를 토하게 만들고 있다.''그런데 사람들은 이 남자에게 속고 있다. 빤히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나를 욕하기 바쁘다. 손을 들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남자의 손을 털어냈다. 순간 남자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남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한마디 해야 했다. 남자의 오열이 거짓말이라고 한마디 해야 했다.''강보에 싸였을 때부터, 죽은 여자의 품에 안겨 이 남자를 찾아다녔다. 아니 내가 찾아다닌 건 아니다. 엄마가 이 남자를 찾아다닌 것이다. 강보에 쌓인 나를 그에게 내밀며 이 남자의 아이라고 제발 여자의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나 이 남자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죽은 다음에서야 남자는 돌아와 오열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도 잘 맞출까.''[냄새 나.]''나는 그렇게 돌아섰다. 이 남자에서 풍기는 위선이라는 냄새가 너무도 역해서 나는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장례식, 온통 검은 옷의 사람들.'하얀 한복을 입은 고작 11살의 나.'화려한 묘지. 주체할 수 없는 국화꽃들.''전부 쓸데없는 것이다. 죽어버렸는데. 이미 죽어버렸는데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저 애 이상하지 않아요? 엄마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아.''─ 표정도 안 변해. 어떻게 저렇게 남의 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무섭다. 애가 애다워야 하는데.''장례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집으로 또 다시 몰려왔다.'변호사.'합법적인 사기꾼.''그는, 엄마가 남긴 모든 것이 내 것이라 말하고 있다.''남자가 또 다시 다양한 표정 변화를 보인다. 만 20세가 될 때가지 누구도 재산에 손 댈 수 없다고 한다. 만 20세가 되는 날 그것은 모두 내 것이라 한다. 남자를 봤다.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보다 더 절망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그가 필요했던 건 엄마가 아니라 엄마가 남긴 돈일 것이다. 불쌍한 남자다. 이 시끄러운 사람들이 빨리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빨리…….''''''나''''''[당신 재규씨한테 접근 하지 마.]''또 다. 귀찮다.''[내 말 안 들려?]''여자가 소리를 지른다. 나는 여자를 보았다. 벌써 1주일째였다. 매일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재규라는 남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내게, 접근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대답 한마디면 돼. 1주일동안 그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네 맘대로 될 줄 알아?]''여자는 제 화를 이기지 못해 도서관 로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몰려든다. 남의 일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싶어 몰려와 나와 여자를 빙 둘러 싸고 있다. 여자의 시선이 내 옆의 남자에게 향했다. 나도 남자를 보았다. 그냥 흔한 남자일 뿐이었다.''[재규 씨!]''이 남자가 재규란 남자인가 보다.''[너, 가져!]''순간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해 졌다.''[뭐?]''악을 쓰며 대들던 여자가 반문한다. 바보 같은 것이 말귀도 못 알아듣고. 귀찮다. 재규가 뭔지, 뭐하는 놈이지 모르지만 나완 상관없는 놈이다. 나는 여자를 밀치고 지나갔다.''''''재규''''''[대단하지 않냐?]''여자가 떠나간 자리에 남은 두 명의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였다.''[목소리는 죽이는데.]''[선배, 내가 이겼어. 술 사!]''[그러지 뭐.]''대답하는 남자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재규와 헤어지라고 생떼를 쓰던 여자. 흔쾌히 술을 사겠다고 대답하는 남자.''[일주일 동안 딱 한마디 했어. 대단한 여자야.]''대답을 얻어낸 여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저렇게 말 안하고 어떻게 살까? 난 못 살아. 혹시 모르지 한 백억 쯤 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절대 저렇게 입 다물고 못 살지.]''[은경아.]''재규란 남자가 여자를 불렀다.''[왜?]''[저 여자 화내게 만들어 봐라.]''[미쳤어 선배? ‘너 가져.’ 이 따위 대답 듣는 데만도 1주일 걸렸어. 그런데 화를 내게 해 보라고?]''[3부 다이아 목걸이. 물론 줄도 포함. 화이트 골드로.]''[싫어. 내 돈 주고 살래.]''[5부 다이아.]''[내 돈 주고 산다니까.]''[뭐가 필요해?]''[왜 저 여자를 못살게 굴지 못해 안달이야?]''둘은 밖으로 나와 학교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도서관 중앙 계단에 앉았다. 그 여자가 내려가는 것도 보인다. 짧은 머리에 가방을 양쪽 어깨에 메고, 흔들리는 줄이 있는 걸 보니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재밌잖아. 무반응이야. 심장이란 게 없는 사람 같아서. 껍데기를 깨면 뭐가 나올까 궁금해 졌어.]''[다른 사람 구해 봐.]''[시작한 거 끝을 봐야 하는 거 아니야?]''[내 논문.]''[뭐?]''[내 졸업 논문 선배가 해.]''[그건 좀 심하지 않냐?]''[그깟 다이아는 나도 살 수 있어.]''재규가 웃었다.''[좋아.]''[좋아. 어떻게 하라고?]''[화나게 만들라고.]''[시간은?]''[1 주일.]''[불가능해. 한마디 듣는데 1주일 걸렸어. 화나게 하려면 몇 배 더 힘든데 겨우 1주일이야?]''[그 이상은 안 돼.]''[그러지 뭐.]''재규란 남자가 이젠 점으로 보이는 여자를 보며 웃었다.'''''''무심(無心)''시심(矢心)''회심(灰心)''회심 2''일심(一心)''동심(同心)''수심(獸心)''심심(心心)''애심(愛心)''욕심(慾心)''진심(眞心)''초심(初審)''흑심(黑心)''양심(良心)''관심(關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