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다 삼킬 수 있기를 바라오.”''핀잔이 다분히 섞인 말투와 함께 이반이 찻잔이 담긴 트레이를 협탁 위에 내려놓았다. 대기 중이던 리암이 재빠르게 달려와 축 처져 있는 엘리엔의 몸을 일으켰다.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엔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꼬박 하루 동안 두통과 고열에 시달렸던 몸은 조금씩 그 기운을 내고 있었다. 푹 잔 덕분인지 머리도 한결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엘리엔은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이반이 가져온 트레이로 시선을 돌렸다. 트레이에는 약과 생강향이 나는 따뜻한 차, 그리고 벌꿀로 코팅된 한입 과자가 올려 있었다. 지난 저녁 너무나도 쓴 약의 맛에 칭얼대며 그것을 모조리 뱉어냈던 자신이 생각났다. 엘리엔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더라. 누군가 약을 다시 먹여 준 것 같은데…… 그때였다. 생각에 잠긴 엘리엔의 이마 위로 서늘한 무언가가 닿은 것은.''“아직 열이 덜 떨어진 거 같군. 얼굴이 빨간 것을 보니.”''이반의 기다란 손이 엘리엔의 이마를 지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스치듯 걷어 올렸다. 열을 내리기 위한 얼음 팩이 엘리엔의 이마에 반창고처럼 딱 달라붙었다. 차가운 느낌에 몸을 떨었던 것도 잠시, 엘리엔은 그 기분 좋은 시원함에 이반의 오해를 정정해 주지 않기로 했다. 들뜬 기분이었다. 왠지 오늘 하루쯤은 이반에게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을 그 느낌에 엘리엔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웃는 걸 보니 이제 좀 살만 한가 보군. 나도 좀 쉬어야겠소. 리암, 나머지를 부탁하지. 그럼 엘리엔, 좀 더 쉬시오.”''눈가를 누르며 말하는 이반의 모습은 굉장히 피로해 보였다. 아마 계속되는 항해로 인한 멀미 때문이겠지만, 거기엔 엘리엔도 한몫했으리라. 지난번 폭풍우 때도 엘리엔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줄곧 옆에 있어 주었다고 들었다. 지금도 감기에 걸려 버린 자신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신경 쓰고 있지 않은가. 엘리엔은 미안한 마음에 어리광 좀 부려 보자는 아까의 결심도 잊고 나가려는 이반의 소매를 두 손으로 꼭 붙들고 말았다.''“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요.”''이반의 시선이 엘리엔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자신을 한참 동안이나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그의 모습에 엘리엔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하던 그때였다. 이반의 입술이 곡선을 그리는가 싶더니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아니까 다행이군.”''처음 듣는 이반의 웃음 소리였다. 보기 좋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듣기 좋은 목소리. 엘리엔은 이반의 얼굴에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마치 피오른델을 만났던 그때처럼.''''''“여기서 뭐 하는 거지?”''언제 다가왔는지 엘리엔의 눈앞에 피로 칠갑이 된 이반이 서 있었다. 끔찍해 보이는 그 모습에 엘리엔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피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탓인지 이반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을 따라 새빨간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며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선실 안으로 들어가시오, 어서!”''거친 숨소리와 함께 잇새 사이로 내뱉듯 말하는 이반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였다. 순간 스치는 생각에 엘리엔은 이반의 얼굴로 손을 갖다 대었다. 뜨거웠다. 평소 창백하리만치 새하얗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을 정도로. 그렇게 이반의 온몸은 뜨거운 열을 내뿜고 있었다.''“열이 있어요. 괜찮은 거예요?”''엘리엔의 말에 순간 멈춰 있던 이반이 당황한 듯 손을 뿌리쳤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소.”''하지만 말과 달리 이제는 눈에 보일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반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엘리엔은 황급히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이반에게 둘렀다. 이반은 얼굴을 찡그리며 엘리엔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 손엔 이미 힘이 빠진 지 오래였다.''“잠깐만 이러고 있어요.”''이반의 고개를 억지로 자신의 어깨로 기대게 한 엘리엔이 이제는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는 그의 허리를 가까스로 붙잡으며 속삭였다.''“거의 끝난 거 같아요. 조금만 버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