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 - 또 다른 시작 ''''사랑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안 하는 거야. 다칠까 봐서……. 난 겁쟁이거든.''하루하루가 무척 분주했다. 남경은 그런 분주함이 좋았다.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미영과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면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고…….'물론 쉽진 않았다. 지난 이 년 동안 가구 디자이너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 일부러라도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친구인 미영의 소개로 보다 쉽게 취직을 할 수 있었지만 그걸로 안도할 수는 없었다. 쉬는 시간,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일한 결과 다행히 어느 정도의 재능과 운으로 탄탄한 회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또한 능력 있는 프로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풀진 않았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며 한 번 더 채찍질을 가하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스산한 바람이 불어대는 가을.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즐겁고 유쾌하던 그녀의 일상을 산산이 무너뜨리고 있었다. 핸드폰 액정에 뜨는 전화번호는 처음 보는 번호였다. 그저 고객의 전화일 것이라 생각하며 명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네. 푸른 숲 이남경입니다.”'[잘 지냈나?]'휴대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낮은 목소리에 그녀는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미 이 년 전에 이혼을 했던 남자의 목소리……. '착잡한 마음으로 손에 힘을 주며 휴대폰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쥐었다. 두 손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손바닥엔 땀이 고여 몇 번이나 휴대폰이 미끄러질 뻔했다.'하지만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그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끊었을 뿐. '갑작스럽게 드는 오한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잊고 지냈던,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년간의 결혼 생활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무척이나 지루한 일이었다. 이렇게 몇 시간이나 앉아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검은색의 연미복을 차려입은 웨이터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보랏빛의 벨벳 소재의 메뉴판을 들고 왔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내려놓기 전에 남경이 입을 열었다.'“블루 마운틴으로 주세요.”'종업원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한 면이 전창으로 되어 카페 밖을 비춰주고 있었다. 곧 종업원이 다가와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스푼을 들고 의미 없는 손짓을 계속해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커피 잔에선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이미 식어버려 따뜻함도 느껴지지 않는 커피 잔을 젓고 있다니……. '왠지 자신이 한심스러워져 피식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