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친구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지극히 평범했다. 청바지 위에 모직으로 된 빨간색 더플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빨간색 코트를 입고 있다고 해서 정열적인 성격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었다. 빨간색 코트 덕에 흰 피부가 더욱 투명하고 생기 있게 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활달해 보인다거나 열정으로 가득 찬 여자로 보이진 않았다. '그녀가 빨간색 옷을 입고 있는 탓에 눈길을 자꾸 빨간색을 찾아 그녀 쪽으로 향하는 것은 틀림없었고 아무도 없던 강의실이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한껏 생기가 넘치는 것만은 분명했다.'동욱이 어떻게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를 그녀라고 생각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직 ‘여자’라고 하기엔 약간 미숙한 구석이 있었고, ‘소녀’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처음 보는 친구니까 동기는 아니었다. 여자 동기들은 정상적으로라면 모두 졸업을 했을 테니까. 한두 해 후배도 아닌 듯했다. 졸업하지 않은 후배들은 대충 얼굴을 알고 있는데, 전혀 낯선 얼굴인 걸 보니 동욱이 군에 가던 해부터 그 다음, 다음 해까지 새로 들어온 신입생일 것이 분명했다.'동욱은 그녀가 강의실에 들어왔을 때 스치듯 잠깐, 너무나 잠깐밖에 보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얼핏 스치듯 봤지만 꽤 예쁘고 꽤…… 예뻤던 것 같았다.'남자들이야 다 똑같지 않은가. 아니 사람은 다 똑같지 않은가. 예쁘고 멋진 것에 눈길이 가는 것 말이다.'동욱은 자신이 본 예쁜 것 바로 그녀가 정말 예쁜지 아니면 얼핏 봤을 때만 예쁘지 자세히 보면 별 볼일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욱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책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그녀는 마치 시험 날 옆에 앉은 친구가 자신의 답안을 보지 못하도록 갖은 방어를 다 하는 속 좁아터진 우등생처럼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녀의 무관심이 동욱을 실망시키고 있었다. '여자에게 관심이 생긴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관심을 끄는 여자가 생긴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군대 다녀오는 사이 여자라는 대상에 몹시 굶주렸던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절 관심 없이 섹시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오로지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가 관심을 끌다니 말이다.'한 번쯤 돌아봐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지루한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뭐야 이거.’'동욱은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전혀 알 리가 없는데도 갑자기 자신을 두고 혼자 가버린 것이 치사하게 생각됐고 그래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녀를 괘씸해하며 그녀가 비운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동욱은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수첩 같은 노트를 훔쳐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물론 동욱은 그런 유치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뭘 긁적거리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동욱이 그녀의 책상에 놓인 노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강의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욱은 노트를 몰래 훔쳐보다 들키기라도 한 듯 깜짝 놀라며 얼른 노트에서 시선을 떼고 강의실로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봤다.'“동욱아! 너, 정말 복학했구나.”'철호였다. 동욱은 지금처럼 철호가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