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서류 검토에 열중하고 있던 정은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사장님. 미은 씨가 오셨습니다. 사무실로 모실까요?”'“동생이……? 이 시간에 웬일이지. 바로 들여보내요.”'의아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정은은 책상을 돌아 나와 사무실 정중앙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곧이어 미은이 문을 열고 부산스럽게 들어왔다.'“언니.”'애교스럽게 웃으며 들어오는 동생을 바라보는 정은의 눈빛이 다정하게 빛났다. 오 년 전 급작스런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녀에게 큰 힘이 되어 준 동생, 미은이었다. 그들은 핏줄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통념을 깨어 버릴 만큼 의좋은 자매였다. 정은의 부모님은 홀로 자라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녀가 안쓰러워 고아인 미은을 데려왔었다. 어린 나이에도 눈치가 빤했던 미은은 정은을 보자마자 친언니 이상으로 따랐고 그 모습에 마음을 놓으신 부모님은 미은을 양녀로 입적했다. '“왔니? 앉아라. 김 비서. 커피 두 잔 부탁해요.”'“방해한 것 아니야?”'눈이 휘어지도록 살살 웃으며 미은이 소파에 앉았다. 운동을 막 끝내고 온 미은의 얼굴은 화사한 생기로 가득했고 잘 관리된 머리에서는 윤기가 흘렀다.'“방해는…….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지나다가 언니가 보고 싶어서 들렸어. 우리 사이에 그러면 안 되나? 섭섭해지려 하네.”'“또 그 소리. 내 동생 이미은 씨. 갑자기 쳐들어온 이유를 이실직고하세요.”'장난스럽게 말하던 정은은 김 비서가 커피를 가져오자 잠시 말을 끊고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잔을 들었다. 정은은 느긋한 마음으로 미은을 응시했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평범한 삶에 동생은 또 다른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무언가에 미친 듯이 빠져든 적도, 어떤 것을 갖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 적도 없던 그녀와 달리 동생은 정말 정열적인 여자였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뽐내는 육감적인 몸매를 타고난 동생은 외모 또한 출중했다. 사랑도 연애도 화끈하게 했고 인생을 즐기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였다. 해와 달. 그녀와 미은을 두고 하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향도 너무 달라 정은이 무채색 계열의 얌전한 의상을 좋아한다면 동생은 원색적인 톱과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화려한 외모와 외향적인 성격을 가졌었기에 친 자식인 정은은 주워 온 아이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오죽하면 왕래가 뜸한 친척은 정은을 양녀로 오해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 생각이 머물자 식은땀을 흘리며 해명하던 그들의 얼굴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사실 언니가 꼭 들어줬으면 하는 부탁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