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귀여운 아기 목소리의 알람. 이후에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벨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거실에는 아무도 나온 흔적이 없이 조용했다.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꺼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지완이 피곤한 얼굴로 나왔다. '그는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를 보고 다시 지은의 방문을 봤다. 그 건너편도 쥐 죽은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지완은 혀를 내두르며 방문 앞으로 갔다. 방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데 역시나 일어나는 기척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이러다간 큰일 날 텐데, 하는 눈으로 보던 지완이 곧 방문을 두드렸다.'“지은아, 오지은. 일어나라!”'묵묵부답.'‘어제 인사 준비한다고 밤샐 때부터 알아봤지.’'오늘 첫 출근하는 지은은 지난밤 긴장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덩달아 지완까지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활동적이고 시원시원한 전형적인 O형인 지은도 첫 출근에는 긴장을 하는 모양이긴 했다. 평생 긴장이란 걸 모르고 산 위인인데 밤을 꼴딱 새운 걸 보면.'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성공적인 첫인사는 그렇다 쳐도 첫인상까지 나빠지게 생겼다. 지완은 할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전등을 켜자 방 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의자 위에는 오늘 입으려고 준비한 것 같은 정장이 걸쳐져 있었고, 바닥엔 뭔가를 끼적인 종이들이 떨어져 있었다. 지완은 그 중 하나를 들어올렸다. ''- 안녕하세요, 오지은입니다. 오늘부터 영업팀에 합류하게 된 막내니까 예쁘게 -''자기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그 위에 볼펜으로 쫙쫙 그어버렸다. 동생 성격을 잘 아는 지완은 그냥 피식 웃었다. 종이를 내려놓고 침대를 보았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곤히 잠들어 있는 동생, 지은은 이불을 돌돌 말아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저 버릇 고쳐 주려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지완은 다정한 눈길로 동생을 바라봤다. '지은이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사고 소식을 들은 지완이 제일 처음 생각한 것은 군대를 일찍 다녀오길 잘했다는 거였다. 그는 대학교 등록만 해두고 바로 군대를 지원해 다녀왔다. 부모님도 없는데 저 어린 녀석을 혼자 두고 군대 갈 엄두는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부모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동생의 모든 걸 챙겨 주었다. 그는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모았다. 물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이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정말 만일의 경우를 위해 적금해 두었었다. 여덟 살이나 어린 동생, 지은은 그에게 동생이면서 또한 딸 같은 존재였다. 항상 보살피고 아껴야 하는 혈육.'지완은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동생에게 다가갔다. 이불을 돌돌 말아서 안고 자는 버릇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생겼다. 일부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외로움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났다. '“지은아, 일어나.”'“으응.”'“나 참, 이 잠보야, 그러다가 지각한다.”'나무라는 어조이긴 했지만 얼굴엔 동생을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완은 그녀의 볼을 가만히 잡고 흔들었다. '“출근 첫날부터 지각할래?”'“어?”'지은의 눈이 번뜩 떠졌다. '“출근?”'지은은 출근이라는 말을 생전처음 듣는 사람처럼 낯설게 중얼거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리번거리며 시계를 찾아보고는 울상이 되었다.'“더 일찍 깨워야지! 어제 인사말 정하지 못했는데.”'“자기가 알람 꺼놓고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워?”'지완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지은을 봤지만 그녀는 오빠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눈치였다.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내려온 지은은 우왕좌왕했다. '“내 옷, 내 옷!”'“아가씨, 의자 위에 걸쳐 놓은 건 뭡니까?”'“응?”'지완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책상 쪽을 가리켰다. 지은은 그때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그녀는 비식 웃고 지난밤 의자 위에 미리 선정해둔 옷을 들었다. '“나 되게 덤벙거린다.”'“출근 첫날이니까 할 수 없지.”'“오빠, 이 옷 괜찮아?”'지은이 정장을 앞에 대보며 물었다. 지완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씩 웃으며 엄지를 내밀었다.'“내 동생, 옷발 하나는 좋지. 괜찮아.”'“그래?”'오빠의 호평에 지은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가득했다.'“어젯밤에 뭘 입어야 좋을지 엄청 고민했거든. 이걸로 콜! 오빠, 나 오늘 아침은 든든하게 밥으로 먹을래.”'“알았다. 옷 갈아입고 나와라.”'“응!”'지완이 자리를 비켜 주고 혼자 남은 지은은 옷을 갈아입던 중 고민에 빠졌다. '“진짜 인사말 어떻게 해야지?”'24년을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독려하듯 거울을 보며 입술꼬리를 씩 올렸다. '오지은, 지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