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이 머리털 나고 들어본 것 중에 가장 충격적인 말을 꼽으라 하면 단연코,'“결혼은 꼭 너랑 할 거다.”'바로 지금 이 말일 터였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나서며, 동그랗게 말린 진분홍 빛 크림을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있었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그녀는 그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땅바닥에 떨어뜨릴 정도였다.'“…… 덥니?”'“생뚱맞게 뭔 소리야. 영하 몇 도니 어쩌니, 날마다 장난도 아니구먼. 뉴스도 안 보냐.”'“체감온도를 확실히 인지하는 걸 보니 제정신이긴 한 모양인데, 어째 네놈 하는 말 꼬락서니가 꼭 불볕더위에 일사병 걸린 사람 같다?”'“내 깊은 속을 몰라줘도 너무 몰라준다니까.”'“깊은 속에서 나온 말이 고작 그렇단 말이지? 대체 결혼이 뭔지는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야?”'“너무 바보 취급하지 마라. 이래 뵈도 너보다 세 살이나 많다. 그건 즉, 네가 유아식 먹을 때 난 이미 밥을 먹고 있었다는 뜻이야. 적어도 너보다 몇 천 그릇은 더 먹었어.”'“바보 취급 받기 싫으면 그 몇 천 그릇이라는 밥값이나 좀 하는 게 어떨까?”'결혼이니 뭐니 하는 건 순전히 농담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청혼을 받은 여자의 반응이 어찌 이 모양일까. 은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내 청혼이 달갑지 않은 이유가 뭔데.”'“너라면 달갑겠니?”'“나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 아닌가.”'“결혼이 조건 따져 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네 놈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누가 그래.”'“얼굴 잘 생겼겠다, 몸매 잘 빠졌겠다, 유머러스하며 머리도 좋으니 크게 성공할 것이 분명하고 또……”'조금도 민망해 하지 않는 말투로 제 자랑을 끝도 없이 줄줄 늘어놓을 태세이던 그의 시선이, 서영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더니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술이 아주 동그랗게 오므려지며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왔다.'“와우, 85점!”'그가 감탄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곳을 저도 모르게 따라가 보던 서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밝은 톤의 반코트로 몸을 감싼 웬 여자가 미끈한 종아리를 드러낸 채 요염한 자세로 걸어가고 있었다. 등을 온통 덮은 긴 생머리를 찰랑찰랑 휘날리는 그 여자는 분명 짤막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을 것이고, 춥지도 않은가 얇은 스타킹을 신었을 뿐인 다리는 같은 여자인 서영이 봐도 눈길을 끌만 했다. 거기다 아름답다고 칭해도 무리 없을 얼굴이라면 말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