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재와 그 여자친구,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세라까지 합세하고 나니 우리 쪽 테이블이 가장 시끄러워졌다. 아무래도 군인인 유희재가 무척이나 오랜만인 세라와 나 인지라 유희재에게도 술을 먹였고 ― 유희재의 여자친구는 그다지 우리가 유희재에게 술을 먹이는 걸 달가워하지만은 않았다 ―, 유희재와 나는 무대에 섰던 멋진 세라에게도 술을 먹였다. 그리고…….' “어어? 이은자기. 천천히. 천천히 마셔.”'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잘 먹히는가봐.”' “쓰읍. 일찍 취하면 곤란하다고.”' 세라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난 천천히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넷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세라는 팀원들에게 잠깐 다녀온다면서 빠졌고, 유희재의 여자친구분은 화장실에 간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세라의 무대 이야기를 하다가 유희재의 군대이야기를 조금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대화거리가 똑 떨어졌다. 나와 유희재는 세라나 여자친구분이 얼른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내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술이 들어와 그런지…….' “지승원…….”' “?”' “봤어요.”' “뭐?” 유희재가 날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 “너, 아직도…….”' “글쎄요.”' 난 약간 숙였던 고개를 들고 씩 웃어보였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에 유희재는 다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있잖아요. 어쩜 난 세라의 말대로 현재의 내 감정을 보지 못하고, 과거의 감정에만 집착하고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곳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간절해요.”' “…….”' “간절한 마음을 계속 무시하려고 했었나 봐요.”' 심장이 먹먹해진다. 아까 봤던, 놓쳤던 그의 옆 얼굴이 잠깐 스치듯이 봤던 그의 눈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영화의 스틸 컷처럼. ' 결국 난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를 본 순간……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지독한 그리움. ' 유희재가 날 내려다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 쪽으로 뛰어오는 세라의 소리까지도.' “뭐, 뭐야! 이은 자기! 왜 울어!”' 세라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고 난 세라에게 안겨 소리를 내며 울음을 토해냈다. 곧 이어 다시 테이블로 돌아온 유희재의 여자친구가 우리 셋의 상황을 보며 유희재에게 ‘무슨 일이야.’ 라고 작게 묻는 물음도 들렸다. '' 세라와 유희재가 혼자 가도 정말 괜찮느냐고 물었다. 난 괜찮다 말했다. 유희재에게도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고, 세라에게도 팀원들과 함께 할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혼자이고 싶었다. 유희재의 여자친구에게 나 때문에 당황했죠, 미안해요. 라는 짧은 사과도 진심을 다해 했다. ' 그렇게 그들과 헤어져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린 난 터덜터덜 집으로 걸었다. 엄마가 딸기가 먹고 싶다한 말을 기억하고 마트에 들려 검은 봉지에 딸기도 담아왔다. 그렇게 걷다가 걷다가 익숙한 집 앞에서 내 발이 조금씩 느려지다가 완전히 멈췄다. 그의 집……. 그의 집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차가운 기운이 등 뒤에서 서늘했고, 불어오는 겨울 바람이 내 얼굴을 시리게 만들고, 다시 조금씩 내리는 눈이 차가웠지만, 왠지 마음만은 따스했다. ' 쌓인 눈을 부츠의 앞 코로 툭툭 칠 때, 엄마에게서 언제 오느냐는 연락이 왔었다. 애매하게 곧 간다 말했다. ‘언제?’ 라고 자세히 묻는 엄마에게 ‘자정 전 까지’는 들어간다 말했다. 지금이 열한시. 내가 저녁에 봤던 그가 혹시 이 곳으로 오지 않을까 하고 그를 기다리는 내 기다림의 마지노선이다. 그렇게 고개를 바닥에 박고 얼마간 있었을까. 내 앞에, 내 그림자를 커다란 그림자가 덮었다.' …… 그 다. 그가, 내 눈 앞에 서 있다.' 그가 날 바라본다. 그의 눈이 나의 모든 심장을 사로잡는다. ' 그와 난 잔잔히 눈 내리는 가로등 아래 서로를 바라보며 말 없이 서 있었다. ' 그를 만나면 꼭 웃어야지. 당당하게 웃어야지. 멋진 여자로 보여야지. 열 일곱의 그 어리숙한 소녀의 모습은 다 없어졌다고, 나 이제 성인이라고. 그렇게 그가 느끼게 해야지 했던 그 모든 준비했던 것들이 사라졌다. 오직 남은 거라곤 그를 향해 뛰는 내 심장의 소리 뿐. 그의 이전보다 더 짙어진 눈매와 체향이 나를 그렇게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들어…… 올래?” 그가 먼저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