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창! '자정을 훨씬 넘긴 야밤에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높은 담벼락을 넘었다. 어둠 속에 조용히 뒤덮여 있던 공기가 술렁거렸다. 이층집의 거실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전등 빛이 까만 공간 속에서 흰 점으로 튀었다. 연달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거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전등 빛 아래에 엉망진창인 거실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실 찬장의 유리문이 깨져 휑한 구멍이 보이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 널려 있었다. 사기 화병에 꽂혀 있던 꽃들도 박살이 난 사기 조각들과 함께 카펫 위에 흩어져 있었다. 깨진 화병에서 흘러나온 물이 카펫에 얼룩을 만들었다. 소파에 놓여 있던 쿠션들이 장소를 이탈해 거실 구석에 처박혀 있었고, 탁자 위를 덮은 유리는 중앙에서부터 사방으로 길게 금이 가 있었다.'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쪽에 작은 몸을 쭈그리고 앉아 있던 계집아이는 일층에서 들리는 물건 부서지는 소리에 귀를 막았다. 조막만한 손바닥을 귀에 바짝 갖다 붙이며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애써 막으려고 했다. 그래도 완전히 막지 못해 날카로운 소음과 고함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웅크린 몸을 더욱 둥글게 말며 입고 있는 노란 잠옷에 고개를 파묻었다.'성한 물건이 남아 있지 않은 거실에 남녀,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얄팍한 눈매를 한 남자는 지겹고 짜증난다는 기색이었고, 여자는 잔뜩 독기가 오른 얼굴이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한 여자의 가녀린 몸 어디에 저런 지독한 독기가 숨어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언제나 완벽하던 화장은 눈물로 얼룩졌고, 한 올도 흐트러짐 없던 머리카락은 고정시켜 둔 머리핀이 빠져 아래로 흘러 내려왔다.'여자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말했다.'“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그래요! 내가 찾아갔어요. 그 계집년 집에 갔어요. 왜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아내 있는 남자에게 꼬리치는 그런 창녀 같은 계집을 내가 만나고 싶어서 만났다고 생각하나요? 웃기지 말아요. 당신이 만나는 계집이 그년 하나만이 아니라는 걸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그럼 왜 만난 거야? 그것도 사람이 그렇게 많은 공공장소에서 그게 무슨 짓이야!”'“하! 남들 이목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여자 관리 하나 못해 지저분한 일을 내게까지 끌고 오는군요. 그 말아먹을 년이 내게 뭐라고 지껄인 줄이나 알고 큰소리치시죠!”'항상 예의범절을 따지던 여자의 입에서 평상시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험한 단어들이 나왔다. 남자는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점점 붉어지는 남자의 얼굴이 귀찮음에서 화로 변하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 여자가 그러더군요. 당당하게 이혼해 달라고! 나 때문에 당신이 억지로 붙들려 있다면서. 그 여자도 알아요? 당신이 다른 여자들을 숱하게 만나는 거? 화만 나면 손이 올라가는 거? 당신은 만나는 여자들마다 그런 가증스런 거짓말을 늘어놓는가 보군요. 하긴, 날 만났을 때도 당신은 그랬으니까. 번지르르한 거짓말만 일삼는 빈 껍데기 같은…….”'“입 닥쳐!”'고함 소리와 함께 남자의 휘두르는 손에 뺨을 맞은 여자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남자는 쓰러진 여자에게 다가가 윽박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