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홍콩 최대 호텔 리조트인 [클럽 레드 드래곤]은 태평양 푸른 물을 관망하는 적룡의 모습으로 리펄스 베이 한 자락에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호텔 벽면 전체를 뒤덮은 웅장한 적룡의 이미지는 35년 전, [레드 드래곤]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카지노에 불과했던 과거에도, 동양 최대 리조트 시설로 거듭나 있는 현재에도 도박의 행운과 미래의 영락을 기원하는 사람들을 사로잡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어져 온 [레드 드래곤]의 번영이 먼 훗날에도 흔들림 없을 거란 믿음, 그것은 사람들에게 있어 지구가 돈다는 사실처럼 불변의 진리와도 같은 것이었다.'사람들의 믿음이 그러하듯, 적룡을 이끌어 가는 사내의 믿음 또한 확고했다.'[레드 드래곤]의 창성(昌盛), 그 중심에 있으며 사람들에게 [레드 드래곤]으로 불려지는 남자, 후퇴 없는 사업적 발전만큼이나 실패 없는 인생을 살아 온 남자, 세상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남자, [레드 드래곤]의 실물이며 동시에 전설이기도 한 남자, 그가 바로 마이클 로우였다.'[레드 드래곤]의 설립자인 영국인, 그의 합법적인 아내가 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아 사생아란 오명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이클. 하지만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 대신 그로부터 [레드 드래곤]의 모든 권리를 이양 받았을 때, 마이클의 인생은 완벽하게 탈바꿈했다.'중국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남다른 외모는 어린 시절, 잡종, 틔기라 불리며 놀림의 대상이 되었었지만 이제 그가 가진 흔하지 않은 다크 블루 눈동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였다. 그 짙고 푸른 눈동자 안에서 느껴지는 얼음 같은 냉정함과 어딘지 모르게 잔인함마저 느껴지는 서늘한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마이클이 적룡의 머리 위로 군림해 홍콩뿐 아니라 동남 아시아 일대로 [레드 드래곤]의 이름을 드날리기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째였다. 처음 적룡의 운영권을 쥐고 사업을 키워나가기 시작할 무렵, [레드 드래곤]을 둘러 싼 암흑조직들간의 이권다툼에서 끈질긴 자생력으로 살아남은 뒤, 마이클은 동명(同名)의 거대 경비 조직을 스스로 구축해 왔다. 이제 호텔 [레드 드래곤]의 성주이며 찌룽(赤龍)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마이클 로우에게 겁 없이 덤벼드는 흑사회(黑社會) 조직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바다가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전면 창이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마이클은 넓은 마호가니 책상을 등지고 앉아 리펄스 베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6년간의 전쟁 같은 세월을 생각하며 그는 손에 든 버본 잔을 가끔 기울였다. 자신이 다듬어 놓은 성지(城地)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마이클이 잔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던 순간 사무실 문을 울리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로 들어오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문을 열고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남자를 보며 마이클이 인사대신 웃음을 건넸다. 그의 웃음에 가벼운 목례를 까딱해 보인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손에 든 서류를 들어 보이며 마이클에게 입을 열었다. '“글로리아가 없더군.”'비서의 행방을 묻는 말에 창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던 마이클이 의자를 회전시켜 책상 앞으로 몸을 당겨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