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은 오늘도 12평 원룸 아파트 침대에서 눈을 떴다. 평소처럼 채 4시간을 자지 못했다. 내리 3일의 야근으로 피곤에 절어, 깨어있는지 자고 있는지 스스로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녀는 부스스 일어나 칫솔부터 찾았다. 이를 닦는 동안 잠이 깰 것이다. 아니, 깨야 했다. 그나마 지은의 유일한 위안은 어젯밤 드디어 리포트를 끝냈다는 것이었다. '‘좀 벅찬 건 사실이었어. 그래도 해냈잖아?’'헤어밴드로 머리를 올리고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며 지은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대학졸업 후 투자신탁회사에 바로 취직이 결정되고, 애널리스트라는 동경하던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를 떠올리면 뭐, 3일 야근이야 감사하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리포트를 완성한 것이다!'그녀는 잠에서 깬지 30분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지은은 아침형 인간을 목표로 그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기를 실천 중이었는데 입사 후 아직까지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이런 날들이 계속된다면 회사근처의 오피스텔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월급을 몇 개월 더 모아야 그게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서울대입구역 앞 토스트가게에서 산 야채토스트를 물고 뛰어오른 2호선 지하철 안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꽤 붐볐다. 강남 한복판의 회사를 다니는 여러 고충 중 하나였지만 이미 익숙해진 지은은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이번 역은 선릉, 선릉역 입니다. 내리실 문은…….”'어느새 꾸벅꾸벅 졸던 지은은 안내방송을 잠결에 듣고 무의식적으로 나는 듯이 지하철에서 뛰어내렸다. 화들짝 놀라 내리면서 무역센터나 종합운동장까지 가지 않고 오늘도 무사히 제 역에서 내린 것에 스스로 대견해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테헤란로의 SW투자신탁회사의 빌딩 안으로 들어섰을 땐 아직 7시가 되기 전이었다. 마침내 지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안녕하세요?”'“오늘도 1등이네요!”'로비의 보안원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웃으며 답례를 보낸 지은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구로 향했다. 이 7층까지의 계단이 그녀의 유일한 운동기구인 셈이었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자산운용팀이 전체를 쓰고 있는 7층은 이 빌딩 내에서도 불이 꺼지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만큼 야근과 스트레스, 말도 못한 긴장과 압박에 시달리는 힘든 일이다.'그런 곳에서 지은은 올해 들어온 유일한 신입이었고 막내 애널리스트였으며, 또 홍일점이었다. 여기서는 숨을 쉬고 하루를 버티는 게 용한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폭탄을 맞은 듯한 사무실에 어제 집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래도 소파 위에 대자로 널브러진 선배는 나은 편이다. 켜진 모니터 앞에서 고꾸라진 애널리스트 선배 옆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자신의 미래가 저런 모습이라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가는 지은이었다.'“선배님, 일어나세요. 아침인데요.”'“아, 지은이 왔구나. 몇 시야?”'“7시 좀 안됐어요, 찜질방 가셔서 아침 드시고 오세요. 아직 시간 있으니까요.”'“아함! 그래야겠다. 범진이는 내가 깨워 갈게.”'“네, 다녀오세요.”'전날 야근의 잔해들- 컵라면, 과자봉지, 구겨진 종이컵과 파지들을 치우며 그녀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고 있는데 7층 담당 청소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에구, 또 먼저 왔네, 그려.”'“안녕하세요?”'“매번 도와줘서 어떡해, 나야 편하지만.”'“제 사무실인데요, 뭐. 같이 하면 빨리 끝나잖아요.”'그렇게 100평이 넘는 사무실 청소가 끝나고, 지은은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깨끗한 사무실에서 신선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진한 원두커피의 향이 잔잔히 사무실에 퍼질 무렵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고 그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설렌다.'“오늘도 1등을 놓쳤네.”'“아…….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