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야 이년아, 그러니까 자하 문 배씨네로 시집을 가란 말이여. 기집 년이 공부는 뭔 공부를 하겠다고 허구헌 날 지랄이여 지랄이……. 애미 애비 잡아먹어 팔자 뒤집어 졌으면 그에 맞게 살아야지 제까짓 년이 무슨 대단헌 집 딸이라구 지 주제에 공부냐구 공부가? 어여 일루 안와? 지금껏 기르고 공부시켰으면 적당히 알어서 취직을 허든 괜찮은 자리 알아서 시집을 가던 해야지 어디서 그 주둥이에서 대학 얘기가 나오느냐구? 이런 썩을 년을 봤나?”'큰어머니의 모질고 거친 욕설이 또 담을 넘어 골목을 메아리친다.'은소 李誾昭.'커다란 둥근 눈에 하나 가득하게 눈물을 담고 은소 는 뒷마당 어두컴컴한 작은 창고 안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큰어머니 눈에 띈다면 보나마나 또 매를 얻어맞고 머리를 쥐어뜯길 것이 뻔하였다. 사촌오라비들의 음험하고 번들거리는 눈길도 진저리가 쳐지도록 소름이 끼쳤다. '여전히 마당 안 수돗가를 메아리치는 큰어머니의 모지락스러운 욕설이 어둑한 창고 안으로까지 파고 들어왔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욕설들이 마치 제 몸에 떨어지는 채찍이라도 되는 것처럼 은소 는 한 마디 한 마디 들려올 때마다 선득거리는 몸을 뒤움쳤다.''5 년 전 외할머니 제사에 다녀온다고 집을 나가셨던 부모님이셨다. 강화에서도 한참을 차를 타고 들어가 그곳에서 또 나룻배보다 조금 큰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석모도가 바로 연희의 외가였다.'학교를 다녀야 하는 은소 를 이틀만 맡기고 제사에 다녀온다고 나가신 부모님은 그날 너무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려던 사공의 욕심이 부른 사고로 외포리 선착장을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가라앉아 버렸다고 했다.'몇몇 사람들이 겨우 헤엄을 치거나 또는 선착장 주민들이 다른 배를 띄워 구조에 나서기도 했지만 평생 헤엄이라는 것을 쳐보지 못한 은소 의 부모님은 깊고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 살아나지 못하셨던 것이다.'이틀만 보아 달라고 하였던 은소 는 그길로 큰아버지 댁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여 열넷 어린나이로 한숨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외동딸로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던 아이는 그때부터 짓궂고 심술궂은 사촌 오라비들의 험악한 장난질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한 번도 부엌일을 해 보지 않았던 고사리 같은 손은 그날부터 물을 긷고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해야 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더럽혀 산처럼 쌓아놓는 빨래를 해 치워야 하는 허드레일꾼이 되고 말았다.'그나마 새벽부터 한 밤까지 이어지는 집안일은 조금 나았다. 잠시라도 틈이 있어 책이라도 볼라치면 소낙비같이 쏟아지는 큰어머니의 욕설과 매질은 은소 의 마음과 몸을 한층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