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강이영입니다.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강이영, 너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얼른 전화 받아. 응? 이 자식아! 진짜 나를 피 말려 죽일 셈이냐? 뭐가 어려운데? 도대체 뭐가! 많은 거 바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재진이랑 공동 연출만 해 주면 되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싫어? 뭐 때문에 이 난리냐고!]'응답기에서 흘러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이영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어쩜 저리도 말을 쉽게 하는지. 공동 연출만 해 주면 된다는 말에 이영은 갑자기 열이 뻗쳐올랐다. '[너도 이제 곧 미니 할 거 아니야. 그 전에 재진이 하고 공동 연출하면서 좀 배우고, 네 이름도 알리고 하면 너도 좋잖아. 재진이 작품이야 시청률도 좋고…….]'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응답기 속 목소리에 이영은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스해진 긴 머리를 긁적이며 거칠게 전화기를 든 이영의 목소리가 잠결이라 그런지 먹먹하게 들렸다.'“부장님.”'[너 왜 이제 전화 받아?]'“계속 씹고 자려다가 조금만 더 참다간 응답기를 부셔 버릴 것 같아서 받은 거예요. 승질에 못 이겨서 부수면 나만 손해니까.”'[그래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건 그렇고, 강이영. 도대체 뭐가 문젠데?]'“그걸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그래! 난 도저히 네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너 저번 달에 단막도 끝났겠다, 이제 곧 미니도 들어가겠다. 그 전에 재진이랑 16부작 하나 해서 감도 익히고 미니 들어가면 좋잖아. 안 그래?]'“안 그래요. 공동 연출? 웃기지 마요. 누가 공동 연출이래요? 내가 박재진 그 개자식을 몰라요? 말만 공동 연출이지 난 순전히 몸빵 B팀인 거잖아.”'숨도 안 쉬고 질러대니 목소리가 갈라져 버렸다. 이영은 다시 한 번 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저번에 그 자식 16부 미니 할 때 기억 안 나요? 최 선배 보고 공동 연출하자고 해 놓고 야외 촬영이란 촬영은 전부 최 선배한테 찍으라고 하고 자기는 고작해야 세트서 몇 신 찍었어. 그래놓고 연출자 딱지를 받았다고요.”'[그래그래, 다 아는데…….]'소리를 질러대는 이영의 목소리에 전화기 속 남자의 목소리는 잔뜩 기가 죽었다. 그래도 이영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어눌하게 행동했다간 꼼짝없이 박재진과 일을 같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알긴 뭐를 알아요? 그래요. 연출한다는 애가 엄연한 공동 연출을, A팀이니 B팀이니 나눈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박재진하고 공동 연출을 하라고? 난 그렇게 못해요. 부장님 말처럼 나도 이제 미니 하나 해야지. 그래서 대박 한번 터뜨리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왜 이제 와서 박재진하고 엮으려고 하는데?”'[그럼 어쩌냐? 호텔 조명 마음에 안 든다고 촬영 접고, 조연배우들 연기력 마음에 안 든다고 접고, 그러기를 벌써 보름째야. 첫 방이 당장 다음 달 초인데 아직 3회도 다 못 찍었다고. 이래선 4회부턴 생방으로 방송 내보내게 생겼어. 그러니까 네가 한 번만 눈 딱 감고 좀 도와주라. 응?]'“아, 몰라요 몰라. 누가 그렇게 유난을 떨래? 그 자식 그러는 거 나 물 먹이려고 그러는 거 몰라요? 생방으로 내보내든 말든 나 알 바 아니야. 주연 선우진 깔고 극본 나하은이면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이니까 생방으로 내보내도 죽진 않을 거 아니야. 난 그 개자식하고 같이하면 죽어요.”'[그럼 나는! 나 이번에 이 드라마 잘못되면 끝이야, 끝! 제발, 이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