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 되던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오늘 낮 최고 기온은 영상 20도까지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어제만 해도 체감 온도 영하 15도라며 연신 두꺼운 옷차림을 외쳐대던 날씨 예고 소리에 다시는 입지 않을 것처럼 옷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코트를 꺼내게 만들더니 오늘은 가벼운 외투조차 갑갑하다. 삼월의 날씨란 정말 변덕스러운 오리 엉덩이처럼 들쑥날쑥 이었다.'나이는 꽉 꽉 채워진 서른에 잘 다니던 직장까지 박 차고 나와서 백수로 집안에만 틀어 박혀서 허송세월 보내고 있다고 방금 전까지 엄마에게 세상에 있는 구박이란 구박은 모조리 듣고 나오는 중인 그녀였다. 그녀의 마음과는 다르게 참으로 날씨 한번 좋은 날. 이렇게 화창한 날에는 다정한 애인 손잡고 꽃놀이 한번 가줘야 엄마의 구박에서 해방도 되고 답답한 마음도 탁 트일 텐데 그녀에겐 애인이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솔직히 그녀에게 있어 애인이라는 단어는 유통기한 한참 지난 냉장고 속 잊혀진 통조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남자가 존재하지 않아도 사는 것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되면서 솔로이자 백수인 자신을 압박해 오는 가족들의 시선이 점점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물론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모습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등록금 비싼 사립대학 4년을 어렵게 보내서 남들은 취직이 어렵다고 난리들인데 떡하니 종합병원 간호사로 취직하여 잘 다니던 딸이 집안의 자랑이었다. 이제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가면 더 바랄 것이 없었던 찰나에, 날 벼락처럼 더 이상 병원에 다니는 의미가 없다며 병원 문을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와 손 놓고 지내는 하나뿐인 딸내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하고 속만 끓였던 부모님이란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6년 동안 병원에서 삼교대 근무다 컨퍼런스다 출장검진이다 해서 제대로 쉬는 날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잠시라도 앉아있을 시간 없이 뛰어다니는 병동근무로 수민이가 지쳤을 만도 하다며 부모님은 처음 서너 달은 그저 말없이 기다려 주셨다. 하지만 근 1년 가까이 직장 잡을 생각도 없이 뒹굴뒹굴 거리는 딸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었다. 차라리 시집이나 가서 자리 잡고 산다면 말이라도 안하겠지만 그 흔한 남자친구 만나러 나가는 법도 없으니 매일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야! 최수민! 너 내 딸 맞아? 왜 이리 속을 썩이냐!”'또 엄마의 잔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자명종이 되어 그녀의 머리를 울리고 있었다.'“엄마…… 왜 또 그래요.”'“너 정말 이러고 살 거야? 너 나이가 이제 서른이라고! 이년아! 내 친구 자숙이네 딸은 다음 주 주말에 결혼한다더라! 연구소 다니는 남자라고 얼마나 자랑을 해대던지. 내가 눈 꼴 시어서 못 봐주겠더라고. 이 년아! 엄마가 이렇게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하겠냐?”'“엄마 친구 딸이 결혼하는데 왜 엄마가 비참한 건데!”'“몰라서 물어 이것아? 너 나이 때 나는 네 오빠에 너까지 낳아서 유치원을 보냈어!”'“그때는 시집을 일찍 가던 때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래요. 요즘은 골드미스의 시대라고!”'“골드미스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래!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너는 그 골드미스인지 골빈 미스 축에도 못 끼잖아! 기껏 결혼자금으로 벌어 놓은 돈 야금야금 깨 먹으면서 골드미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넌 아무 생각 없는 골빈 미스야! 이 웬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