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정신으로 방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세차게 박동하고 하반신은 불끈거리고. 재영은 한 시간을 러닝머신에서 뛴 것 같은 피로를 느끼며 은형을 침대에 곱게 내려놓았다.'“으응…….”'은형은 자신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슴에 손을 모으더니 다시 색색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재영은 아우성쳐 대고 있는 그의 것을 먼저 잠재우기로 하고 욕실에 들어가 서둘러 옷을 벗고 시원한 물을 틀었다.'“후우…… 이게 무슨 꼴이냐, 김재영. 여자 킬러라는 놈이 어째 저 성은형만 보면 이 모양인지.”'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에 그의 달아올랐던 몸이 서서히 식고 있었다.'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친 채 욕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대충 머리의 물기를 털어낸 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던 재영의 손이 떨렸다.'“헉! 이, 이게 뭐야!”'가슴에 손을 모으고 얌전히 자던 은형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었다. 반쯤 벌어진 입, 앞가슴이 풀어헤쳐진 블라우스, 옆으로 누워 있는 그녀의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다리는 엑스자로 교차하여 끝이 말려 올라간 스커트 사이로 분홍 팬티가 살짝 보이는 자세로 옅게 코까지 골며 잠들어 있었다. '찬물을 뒤집어쓴 보람도 없이 재영의 아들내미가 다시 한 번 일어서고 말았다. 재영은 떨리는 손으로 맥주 캔을 따며 침대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려 티브이를 켰다.'“아앙~ 아흑! 아…… 거기야! 아학! 넘 좋아!”'‘이, 이건 무슨 개 같은 경우냐.’'티브이에서는 한창 남녀가 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여자의 교성이 스테레오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에 묵었던 사람이 성인 채널에 맞추어 놓고 나간 모양이었다. 재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눌러댔다. 삐릭.'“아~오~ 예스! 예스! 디퍼! 디퍼!” '국적만 바꿔서 이번엔 핥고 빠는 소리로 방 안이 울려 댔다. 결국 재영은 파워 버튼을 눌러 버렸다.'이렇게 시끄러웠는데도 절대 깨지 않는 은형의 무신경함이 차라리 재영을 안심케 했다. 지금 그녀가 깨어났다간 한 마리 짐승이 된 그에게 단번에 먹혀 버릴 것이다. 재영은 눈 돌릴 곳을 몰라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술이나 마시자.'방 안의 미니바에서 양주를 꺼내 들고 소파로 돌아온 재영은 말없이 술을 따라 입에 털어 넣었다. '“음냐, 음냐 쩝. 음…… 재영 오빠아.”'은형이 침대 위에서 또 자세를 바꿨는지 작게 잠꼬대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영은 푸훗 웃었다.'‘잠깐, 오빠?’ '그녀는 그를 오빠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이 아가씨 무슨 꿈을 꾸는 건지.'술을 마시며 협탁 위에 놓여 있던 잡지를 꺼내어 눈으로 훑던 재영이 책을 덮고 침대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은형아, 오빠라고 불러 봐…….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꿈에서라도 네 오빠가 되고 싶다. 응? 자아, 은형아.”'잠시 눈썹을 찌푸리던 그녀는 다시 편안하게 웃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재영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의 분신은 자꾸만 그에게 짐승이 되라고 유혹하고 있었지만 재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서 물러나 소파에 팔을 베고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