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사랑아,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알지. 그렇게 울기만 하면 어떡하니. 제발 부탁이니 이 문부터 열어 봐. 자꾸 이러면 엄마 정말 속상해 죽어. 으응?”'엄마가 문을 두드리며 애걸복걸한다. 아빠가 올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속이 타기도 하리라. 아마 이런 모습을 아빠가 보는 날에는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모든 죄를 엄마에게 뒤집어씌울 테니까. 필시 아빠는 ‘우리 사랑이가 어떤 딸인데 이렇게 애를 울려.’ 하면서 사정도 듣지 않고 모든 불똥을 엄마에게 튀길 것이다. 엄마는 억울하고 속이 쓰려도 아빠의 혈압을 우려해 가만히 듣고만 있겠지. '그걸 생각하면 안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문을 열 수 없는 일! 오늘은 내 생애에서 두 번째로 불행한 날이다. 너무 절망적이다 보니 화가 난다기보다는 서러움이 복받친다. '“흐윽……윽!”'나 이제 어떡해?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S대 최고의 합격률을 자랑한다는 명원외고에 합격한 게 너무 좋아 개구락지처럼 팔짝팔짝 뛰면서 춤을 추었다. 선생님들도 축하해 주었고, 같이 합격한 애들과는 죽이 맞아 주스와 사이다로 축배의 잔까지 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또 어떻고! 친척들이란 친척들에게 죄다 전화를 걸어 내 합격을 자랑한 다음 호텔에서 축하 파티를 열 테니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참석해 금씨 집안의 결속과 단결을 보여주자고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나는 명원외고에 갈 수 없다. '‘합격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불합격이었다.’'이런 되지 못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랬더라면 차라리 덜 억울하고 슬프지. 아주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합격의 티켓을 거머쥘 정도의 실력은 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의 일이라면 물심양면으로 손을 걷어붙이는 아빠와 엄마 덕에 주야장천 고액과외만 받았는데 거기서 떨어지면 정말 문제지. 내 머리는 그렇게 석두가 아니었고, 과목에 편식이 있기는 했지만 공부라는 것을 어느 정도 즐기는 편이었기에 외고 합격은 미리 예견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나는 거기에 갈 수 없다.'가고 싶지 않아 가지 않는 게 아니라 가고 싶어도 못가는 것이다. '백성하! 백사가 거길 합격했는데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차라리 연합고사를 다시 봐서 일반 고등학교를 가는 게 낫지 백사가 다니는 학교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흐윽…….”'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오열이 터져 나온다. 속이 상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백성하, 대체 그 인간이 왜 명원외고를 지원한 거야! '아무리 따져도 이해가 안 간다. 입학 초부터 학년 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는 백병원 원장의 아들 백성하는 그냥 저냥한 외고가 아니라, 전국의 수재들만 모아놓았다는 과학고에 들어가서도 충분히 상위권을 유지할 성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