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KTX 객실 안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소란스러웠다. 뒷좌석에 앉은 어린아이의 칭얼거림보다,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가 연신 신경을 갉아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특실을 끊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 만큼.'소정은 대전을 지나오면서부터 그래왔듯 멀찍한 곳에 달린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었다. '실시간 뉴스를 알리는 자막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화면 속에선 천재 소리를 듣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신들린 듯 연주를 하고 있었다. '소리 없는 영상을 지켜보는 일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지나가는 역무원을 불러 세워 개당 천오백 원이라는 객실 전용 이어폰을 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달리한 소정은 간간히 비가 뿌려지는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뿌옇게 내려앉은 하늘을 담고 있는 낙동강은 흐릿하다 못해 푸른 이끼 빛을 띠고 있었다.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날고 있는 철새들과 유유히 낚시를 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며, 소정은 비로소 서울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비록 하루짜리 월차에 불과하지만 잠시 서울을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여행의 목적은 충분했다.'열차가 조금 뒤 밀양에 정차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소정의 얼굴에 한 자락 상심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열차의 종착지인 부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굳히리라 마음먹은 그녀였다. 아니, 어쩌면 서울을 떠나오면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모를 일이었다.'창을 두드리는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잠시 밀양에 정차했던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소정은 묵은 마음의 체증을 털어내듯 한 자락 한숨을 얕게 토해냈다.'“후우…….”'커리어를 밀고 지나가는 역무원에게서 산 캔 커피 하나를 비울 즈음, 객실 안엔 열차가 곧 구포에 정차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시종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차표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소정은,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자그마한 핸드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미 마음의 결정이 내려진 일이라면 굳이 열차의 종착역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종종걸음으로 역사를 빠져나온 소정은 길 건너편에 보이는 약국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식사를 한 기억이 없는데, 호되게 얹히기라도 한 양 명치 근처가 뭉근했다. 활명수 한 병을 사서 마신 그녀는 휴대폰이 들어있는 핸드백을 잠시 쳐다보곤, 이내 약국을 빠져나왔다.'전원을 꺼둔 휴대폰 속에 포개진 종잇조각처럼 쌓여있을 부재중 전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