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셨다니까 그러네. 정말 계속 이럴 거야?”'“싫어요!”'분명히 어른 목소리인데, 굵은 저음의 어른 목소리인데 억양은 꼭 어린아이 같았다. 생떼 부리는 어린애. 하지만 억양이 어떻든 간에 굵은 저음의 목소리를 듣고 보니 은로는 덜컥 겁이 났다.'내가 어쩌자고 여길 왔을까, 어쩌자고 여길 올 결정을 내렸을까 후회됐다. 자폐나 정신지체를 앓는 장애우를 전담해 맡아 보살피던 은로. 베테랑이라면 베테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성인 정신 지체우는 처음이었기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실수한 거야.’'어떻게 실수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긴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예삿일이 아닌 것 같다. 첫 만남에서부터 삐걱거리니 말이다.'이렇게 방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인 지 27분 째. 슬슬 지쳤지만 은로는 지친 내색을 하지 않고 나올 때까지, 아니 인사를 받아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맞다. 은로는 저 친구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사를 받아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 기다리는 것. 그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것. 정신지체를 가진 친구에게 다가가기 위한 첫 번째는 바로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어서 나와. 선생님 기다리시잖아.”'관리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르고 달래고 사정도 했지만, 그 친구는 방 안 붙박이장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붙박이장 안이 저 친구에게는 가장 크고 안전한 피신처인 듯했다.'“열어. 어서 열라고!”'할아버지가 윽박지르는 것을 보니 그 친구가 붙박이 장 안에서 장롱 문을 틀어잡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선생님 싫어요, 싫어요!”'선생님 싫다는 외침만 벌써 백 번은 했을 것이다. 줄기차게 싫다는 소리만 외쳐대며, 그 친구는 관리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자꾸 이러면 아버지한테 말씀드릴 거야!”'할아버지가 보다 못해 엄포를 놓자, 떼를 쓰고 악을 쓰던 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아래층에 회장님 오셨다고. 아버지한테 인사도 해야지. 계속 이럴 거야? 선생님 오셨는데 인사도 안 하고 떼쓴다고 말씀드려? 기어이 불벼락 맞고 싶어!”'할아버지가 재차 겁을 주었다.'“어서 나와서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아버지한테도 인사드려.”'“아버지 무서워요. 싫어요. 살려주세요.”'그 친구가 무서운 듯 빌었다.'아버지를 정말 많이 무서워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것, 아니 어쩌면 아버지를 만나는 행위 자체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너 이놈, 당장 나오지 못해!”'어디선가 불벼락 떨어치는 듯한 호통소리가 들렸고, 은로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회장님이 2층 거실에 서 있었다.'“당장 나와! 당장 나와, 이놈아!”'회장님이 노기 띤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얼른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