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연은 아침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바빴다. 덕분에 오늘 있을 중요한 공연을 펑크 내 버리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화가 난 단장의 얼굴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오금이 저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라연은 당장 수습해야 할 많은 일들 때문에 다른 건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남자 아이 둘을 키운다는 건 때로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감수해 내야 하는 일인가.'천식이 있는 네 살 난 둘째 아이가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탓에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다녀와야 했을 땐 그래도 공연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홀로 남겨 둔 여섯 살 난 첫째 아이가 집 안을 엉망진창 오 분 전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엔 정말이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왜 첫째 아이를 혼자 남겨 두었을까 자책할 겨를도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몽땅 뒤집어 놓고, 틀어 놓은 수돗물을 잠그지 않아,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었을 때 비로소 라연은 민석 선배에게 SOS를 청했다. '연습해 둔 대로만 공연 순서를 바꾸면 그럭저럭 단장님 눈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라연의 진짜 두 아이 말고, 라연의 가짜 아니, 귀여운 돌고래 아기들은 2년 동안이나 함께해 온 라연의 숨결을 애타게 찾는 모양이었다. '베테랑인 민석 선배조차 어쩌지 못하는 돌고래 아기들의 제법 아찔한 횡포에 결국 단장은 미친 듯이 라연을 찾아 댔고 라연은 결국 잠수를 타는 쪽을 택했다.'딱 한 번만 봐주세요. 딱 한 번만.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요!'라연은 단장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틈조차도 찾지 못했다. 아이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 내야만 했다. 일단은, 일단은 그것이 먼저였다. '마룻바닥에 줄줄줄 흐르고 있는 물부터 밖으로 퍼내고, 그 다음에 부엌 바닥에 널브러진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다 치우고 너 두고 보자.”'“헤헤…….”'라연은 장난꾸러기 한울을 향해 눈을 흘기며 경고의 말을 내던졌지만, 한울은 라연의 눈빛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까르르르,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아니면 정말로 엄마를 봉으로 아는지 배슬배슬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더니 자신의 방 안으로 쏘옥 몸을 감추고 있었다.'아휴, 얄미워.'라연은 한울을 향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자기가 낳은 아이이긴 하지만 이런 순간에 정말 얄미운 건 어쩔 수가 없다. '“한빛이 괴롭히지 마! 너 그럼 정말 가만 안 둬.”'라연은 한울을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한울에게서는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둘째 아이 한빛이가 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데, 혹시 그 아이에게 한울이 장난이라도 걸까 봐 노심초사였지만 일단 엉망이 되어 버린 집 안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