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뵙겠습니다. 김시연이라고 합니다.”'지극히도 단조로운 음성이었다. 결혼할 사람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보기엔 심하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특별히 긴장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설레거나, 들떠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요. 어서 와요. 일단 앉아요.” '장차 시어머니가 될 지선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시연은, 그녀를 따라 넓은 거실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중학교 도덕 선생님이라고 들었어요.”'“예.”'“부모님 두 분 역시 교직 생활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예.”'“대대로 교육자 집안이니, 가정교육이 어땠을지는 염려 안 해도 되겠네요.”'지선이 호호, 거리며 인상 좋게 웃어보여도, 시연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이 좀 멋쩍은지 지선이 약간 뽀로통한 얼굴을 했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금 입매를 올리며 생글생글 웃었다.'“그러고 보면 부모님이 참 대단해. 친딸도 아닌데 이렇게 반듯하게 키워놓기가 어디 쉽나. 아, 내 말 오해하지 마요. 칭찬이니까.”'“……예.”'“결혼을 하게 되면, 직장은 그만둬야 한다는 거 알고 있죠? 우리 애가 나이가 있으니까 손자를 좀 빨리 봤으면 해요. 일 핑계대면서 여자가 바깥으로 나도는 것도 별로 좋지는 않을 거 같고. 내가 너무 구식인가요?”'“……아닙니다.”'“이해해 주니 고맙네요. 게다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오죽 스트레스 받는 직업이에요? 학생들한테 치이다 보면 들어설 애도 안 들어설 수도 있고.”'시연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지선은 연신 사람 좋게 방긋 웃어가며 말을 늘어놓는데 이상증세가 찾아오니 난감했다.'“어머, 갑자기 안색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죄송합니다. 아침 먹었던 게 얹혔나 봐요.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아, 그래요.”'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시연이 화장실로 향하자, 지선은 목석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는 자신의 아들 류 강에게 시선을 주었다. '“좀 웃어라.”'그녀의 핀잔에도 강은 잠자코 찻잔만 들었다.'“애가 곰살궂은 구석은 없어 뵈지만, 그래도 사람이 참하고 단아하니 천생 여자 같아서 마음에 드는구나.”'“어련하시겠어요. 어머니가 고른 여자이니.”'찻잔을 내려놓으며 딱딱하게 말하는 강의 음성에 지선이 눈을 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