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몇 시나 되었을까. 하은은 아직도 잠이 덜 깨, 떠지지 않는 눈이었지만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려 희미한 벽시계의 바늘을 확인했다. ' “세상에! 어떻게!”' 기절할 만큼 놀라버린 하은이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며 정신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그래도 안경은 너무했다 싶어 급하게 렌즈를 찾아 끼웠다.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는 헐레벌떡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늘은, 꼬박이 일년간 적금을 들어서 겨우 해외여행을 가게 된 날인 거다. 그 기대와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던 게 늦잠을 자게 만든 모양이었다. ' ‘그나마 어제 미리 짐 싸 놓길 잘 했지.’'라고 생각하며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랫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아니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저 여행가거든요. 저희 집 좀 부탁드려요!”' 묵직한 가방을 끙끙거리며 끌고는 큰길까지 땀이 범벅이 되도록 정신없이 달려갔다. 열심히 손을 흔들며 택시를 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 도착한 하은은 자신의 차림새를 훑어볼 시간도 없이 급하게 티켓팅(Ticketing)을 하고는 7번 게이트로 달렸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그 무거운 가방을 짐칸에 넣지도 못하고 그대로 핸드캐리 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첫 해외여행 이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짐 들고 뛸 일이 아니라 우아하게 면세점에서 아이쇼핑도 하고 커피숍에서 카푸치노도 마시며 여유 있고 우아하게 여행의 시작을 즐기고 싶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푸껫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지난 1년 간 열심히 돈을 모았다. 사고 싶었던 옷도 화장품도 아껴가며 그동안 정말 알뜰히 살았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흐뭇해하고 있었다. 얼마나 해보고 싶었던 혼자만의 여행인가.' 이제 23살의 메이크업아티스트인 윤하은은 늘 여행에 꿈을 꾸어왔었다. 그나마 아직은 비수기인데다, 비행기 자리가 가장 여유 있고 가격이 저렴한 곳으로 고른 곳이 바로 이곳 푸Rpt이다. 방콕을 경유해서 푸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다시 갈아타야 했다. 짐칸으로 넣지 못한 짐을 끌고 그 길고 긴 방콕 공항을 방황해야 했다. 방콕 공항은 유난히 옆으로 길어 게이트의 배정에 운이 없으면 엄청나게 걸어야 했다. 드디어 푸껫에 도착했다. 공항 청사 앞으로 나온 하은은 택시를 잡았다. 태국인 기사는 뒤 트렁크를 열어 주고는 도와주지도 않고 냉큼 운전석으로 달려가 시동을 걸었다. 그녀는 별수 없이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가방을 낑낑거리며 그곳에 실었다. 그러나 트렁크 문을 닫으려는 순간 손에 들려 있던, 호텔 이름이 적힌 쪽지가 바람에 날아갔다.' “어머나!”' 쪽지를 쫒아 두세 발자국 뛰어 갔다. '출국장을 나서면서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래헌. 짙은 선글라스 속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자를 더욱 눌러 쓰고는 좀 더 걸음을 서둘렀다. 역시 그 누군가의 다리도 조급히 움직여짐이 느껴진다. 그렇게 조심하며 비밀리에 나왔음에도 미행을 당하다니 파파라치들의 엄청난 정보력에 혀를 내두르며 래헌은 공항청사를 뛰듯이 빠져 나갔다. 행운이었다. 마치 자신을 위해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듯 바로 앞에 택시가 문까지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번 생각도 않고 자신의 가방을 그곳에 던져 넣고는 택시에 올라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