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바람에 거리를 노랗게 물들였던 은행나무 잎들이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낭만적이기까지 한 풍경 아래 한 여자가 포장마차 수레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은행잎들에 발이 미끄러지길 몇 차례, 그렇지 않아도 제 등치보다 몇 배는 큰 수레를 끄느라 낑낑대는 그녀에게 타인의 낭만은 재난일 뿐이었다. '[소화병원] 정문 앞 건널목. 수시로 차가 드나드는 병원의 특성상 신호의 간격이 짧은 횡단보도가 정문 앞을 가로질러, 병원의 부속건물과 응급실, 주 병동을 잇고 있었다. '신호등 앞에는 병원 옆에 위치한 대한민국 제일 명문대라 일컫는 연희대의 건장한 남학생들이 여럿 있었지만, 일행과 이야기를 하거나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에 몸을 움츠리기만 할 뿐, 그녀의 힘겨움을 덜어주는 학생은 없었다. '힘겹게 수레를 끄는 노인을 돕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어느덧 잊힌 공공캠페인의 추억일 뿐,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해진 개인주의는 ‘나’ 아닌 ‘타인’의 일에 쉬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 ' '민주는 수레를 멈추었다. 그녀가 엄마를 대신해 포장마차를 시작한 지도 6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말을 달리하면, 그간 포장마차로 그녀와 동생들을 키워 오신 엄마가 뇌종양이란 병명으로 쓰러진 것이 벌써 6개월이라는 소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거대한 하얀 건물을 바라보았다. 저 안에 지금도 병마와 싸우며 고통스러워하시는 엄마가 있었다. 수술을 얼마 남기지 않은. 민주의 가슴으로 진한 슬픔이 배어들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던 민주는 다시 수레를 움직였다. 신호가 바뀌어 더욱 복잡해지기 전에 제 갈 길을 가야했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규모의 종합병원인 [소화병원]. 그 담벼락을 타고 서너 개의 포장마차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건너가려는 사람과 건너오는 사람이 뒤엉켜 복잡해진 횡단보도 위에 포장마차 수레는 행인들의 진로를 막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당황한 민주의 시선 끝으로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