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쾅쾅쾅.'문 옆에 버젓이 자리한 초인종은 무시하고 철희는 대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도대체 초인종은 왜 있는 거라 생각해요?”'마침내 이마에 ‘짜증’이라고 쓰여 있는 변태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눈을 위로 치켜뜨며 자기보다 족히 20cm는 크고도 남을 남자의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이게 뭐요!”'철희는 불결한 물건이라도 된다는 듯 문제의 책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그녀의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나영은 ‘그 말투야 말로 그게 뭐요?’라고 되묻고 싶은 것을 참고 책을 들여다봤다. 『유도가 좋아』, 그것은 그녀의 첫 정식 출판작이자, 현재 나름 인기리에 연재중인 작품이었다. '“그거 내 책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뭐요?”'“이게 뭐냐니? 당신은 유도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어!”'“웃음거리?”'“감히 유도를 이딴 만화의 소재로 사용하다니!”'그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철희는 더럽다는 듯 그녀의 책을 끄트머리만 살짝 잡고 또다시 흔들어댔다. 그러면서 얼마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지, 땅에 떨어진 똥 묻은 신문지를 집어들 때도 저렇게는 안하겠다 싶을 정도였다.'“이봐요. 이딴 만화라니? 당신이 뭔데 남의 창작품을 모욕하는 거예요?”'“모욕! 그건 당신이 유도한테 한 짓이고!”'“내가 유도한테 뭘 해요?”'“유도를 이런 쓰레기의 소재로 쓰다니 당신 제 정신이야?”'“이봐, 당신이 뭔데 남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모욕해. 당신, 내 작품 끝까지 제대로 읽어보기는 했어?”'“내가 왜 이런 쓰레기에 시간낭비를 해야 하지? 한 페이지면 충분했어.”'철희는 그 말과 함께 그를 가장 분노케 한 문제의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얀 도복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의 근육을 보면 내 마음이 두근두근 떨려.'철희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 대사가 쓰여 있는 말칸을 톡톡 두드렸다. 순간 나영은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별것도 아닌 대사에 불타는 고구마처럼 빨개져서 흥분하고 있는 눈앞의 덩치 큰 남자가 오히려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유도를 소재로 한 것 까지는 좋아. 그래, 오히려 감사하지. 유도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그런 만화를 읽고 유도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 문제는 이거야. 왜 남자가 남자에게 홀딱 반해서 이런 유치찬란하고 혐오스러운 말을 하느냐 이거야!”'“이보세요, 대한민국은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거든요. 헌법상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갖고 있다고요. 당신이 뭔데 내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당신한테는 그게 쓰레기에 불과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소중한 작품이거든요.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말란 말이에요.”'나영은 철희의 손에 들려있는 자신의 책을 휙 잡아챘다. 어안이 벙벙해진 철희는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저런 변태녀를 정체도 모르고 잠시나마 좋아한 마음을 품었던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그뿐이랴! 그녀에게 자신의 도장에서 장장 일주일이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결국 오늘의 사단(事端)을 만든 자신의 발등을 찍어버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으아악! 나 지금 돌아갈래!’'철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절규했다. 속아도 너무 단단히 속아 할 수만 있다면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위자료까지 청구하고픈 ‘나는 억울하다’의 주인공 철희의 과거로 되돌아 가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