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강력한 진혈귀라지만 잠시나마 심장이 멈추었던 충격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급박한 긴장감과 떨림이 가신 뒤 마주한 그의 얼굴은 다소 해쓱해져 있었다. '그 마른 얼굴을 본 순간, 시야의 머릿속을 스친 것은 지하실에서 인혈귀들의 공격을 막아내던 진후의 모습이었다. 그토록 밉다 싫다 하면 조금은 반감을 가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변함없이 그녀를 감싸는 남자. 아마도 그는 그녀로 인해 심장이 멎는 순간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그녀는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왜 왔어, 유진후?”'“아직 너에게 인을 새기지 못해서. 그게 없으면 언제 또 다른 자들이 널 노릴지도 몰라.”'“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처럼 들리는걸. 그것 말고는 더 변명할 게 없어?”'“도망칠 때 도망치더라도 네가 위험해지는 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진후의 얼굴은 변함없이 차분했다. 그는 가볍게 손끝으로 시야의 목덜미를 짚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손이 닿은 부분이 뜨끔거리면서 묘한 열기가 그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시야는 반사적으로 목덜미에 손을 가져갔다. '“……귀주에게 이런 능력까지 있는 줄은 몰랐는걸. 미리 알아두어야 오늘 같은 꼴을 안 당할 텐데 말이야. 다른 건 또 없어? 소설에서처럼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순 없는 거야? 박쥐들을 부리는 힘은 없고?”'“빈정거리지 마, 시야. 그런 것 따윈 없어. 네가 알고 있는 것, 네게 사용한 능력이 전부야.”'인(印)을 남겨 두어 다른 혈귀들의 접근을 막는 것, 그리고…… 인간을 혈귀로 만드는 능력. '한동안 진후를 노려보던 시야는 매몰차게 돌아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진후가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가볍게 품에 안았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그를 뿌리치려 한 순간, 나직한 음성이 귓가를 스쳤다.'“오늘까지 해서 전부 다섯 번이야. 여섯 번째로 도망치고 싶다면 오늘 일을 기억해. 네가 어디에 있건 어떤 모습이건 간에 난 반드시 찾으러 갈 거다.” '내 피가 네 몸에 흐르는 한, 난 널 느낄 수 있어.'시야는 질끈 눈을 감았다. 사람이 사람을 향한 감정이 어쩌면 이렇듯 집요한 것일까. 예전에는 이 남자로부터 온기 어린 눈빛 하나, 희미한 웃음 하나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상적인 연인다운 관심과 애정이었고, 결코 지금처럼 격하고도 맹목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그 전부를 내걸어 버린, 생명마저 상관없을 만큼 지독한 사랑을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야와 진후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무어라 말을 할 필요도, 행동으로 나타낼 필요도 없었다.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기에. '진후는 서늘히 굳어진 그녀의 뒷목에 가만히 뺨을 대었다. 그의 연인, 그의 아내, 그가 유일하게 갈망하는 단 하나의 짝. 그녀는 괴물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그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라고 해서 귀주란 것이 어떤 자리인지 모르진 않았다. 불완전한 진혈귀로 태어난 귀주의 자식들이 무슨 짓을 해야만 완전한 진혈귀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귀주가 될 수 있는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괴물이 되어서라도 함께 하고 싶었다면 변명일까. 원망하고 미워해도 좋으니 시야가 그의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었다. 흔하디흔한 다음 세상, 환생이란 말은 진후에게 뜬구름보다도 더한 허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귀주가 되기로 결심했고, 시야를 곁에 두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일생토록 내 눈이 바라볼 여자도, 내 심장이 반응할 여자도 오직 너 뿐이야.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너를 원해.’'원하고 또 원한다. 나의 시야, 세상 단 하나뿐인 내 연인아. 차갑게 식어가던 너를 나와 같은 혈귀로 살려낸 걸 결코 후회하지 않아. 너는 괴물이 되어버린 우리들을 증오하며 나를 원망하지만, 난 네 원망과 증오마저 사랑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