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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며느리 관두고 커피 내립니다 3권
지은이 : 그린글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 그린글, 2025
※ ISBN : 979-11-7408-006-6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6월 17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13. 시음회의 주인공
하얀 커피잔에 담긴 음료는 언뜻 보기에 세이리안이 내린 것과 차이가 없어 보였다.
다만 조금 전과 달리, 귀족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먼저 마시겠다고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세이리안과 눈을 시퍼렇게 뜬 채 뒤로 물러나 있는 황비의 눈치를 보는 거였다.
그때.
“제가 한 잔 마시고 싶군요.”
누군가 손을 들고 말했다.
우아한 태도로 드레스 자락을 잡고 앞에 나온 바네타 부인이었다.
사교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서 깊은 백작 가문의 대부인.
그 말을 신호로, 다른 몇몇 귀부인들도 손을 들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마담 에일린.”
“저도요.”
테이온은 모르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에일린이 티 파티에서 친해진 부인들이었다.
그들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들의 남편도 함께 끌고 와 에일린을 향해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그러자 에일린이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커피잔을 내밀었다.
귀부인들이 조심스럽게 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맛있어…….”
멍한 얼굴로 터져 나온 감탄.
그건 방금 전 오갔던 아부 섞인 칭찬과 달리, 거짓으로 지어낸 반응이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진심으로 놀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지?”
“필립 경의 저런 표정은 처음 보는걸? 늘 무표정한 얼굴인데…….”
그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다른 귀족들도 하나둘 에일린의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건…….”
“아까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음료 같아요!”
노골적으로 황비의 편에 선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신기하다는 듯 감탄을 토했다.
그만큼 커피 맛이 너무 심하게 차이 났기 때문이었다.
세이리안이 내린 커피에선 알 수 없는 쓴맛이 났으며, 끝에는 잡내도 조금 스쳤다.
그에 비해 커피 본연의 향은 깊지 않았다.
그러나 에일린의 커피는 달랐다.
“코를 감싸는 이 구수한 향기……. 알 수 없이 초콜릿 향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요? 저는 끝에서 산딸기 향을 느꼈는데!”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완전히 커피에 사로잡힌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세이리안이 화도 내지 못한 채 황당하다는 듯 입만 벙긋거렸다.
굳이 거수로 승패를 가릴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완벽한 패배였다.
* * *
내 티 파티에 참석했던 귀부인들을 중심으로, 들뜬 소란이 일었다.
나는 이 모든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같은 재료에서 이렇게 다른 맛이 날 수 있는 거죠…….”
여러 요인이 있지만, 세이리안이 잘난 척하느라 느리게 원두를 간 것도 한몫했다.
최대한 빨리 갈아야, 분쇄 과정에서 커피 아로마가 날아가지 않거든.
‘결국 얼마나 커피에 진심이냐로 승패가 완전히 갈린 거지.’
누가 보아도 내 승리다.
혀와 코가 달린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세이리안이 내린 커피와 내가 내린 커피는 크게 차이 났으니까.
사실 나는 이 결과가 별로 놀랍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마치고, 10년이나 카페에서 일을 했던 바리스타.
기껏해야 일주일 남짓 커피를 배운 듯한 아마추어에게 밀릴 리가 없었다.
‘프로가 아마추어를 이겼다고 기뻐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세이리안 황녀가 제시한 대결을 굳이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도 다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걱정한 건 오직 황궁 연회에 오는 일뿐.
시음회에서 사람들을 내 커피 맛으로 설득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내 실력에 자신 있었다.
그런 나를 테이온이 놀란 듯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무뚝뚝한 사람을 저 정도로 놀라게 하다니.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는 그를 향해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어때요. 이 정도면 로데릭 상회에 취직시켜 줄만 하죠?’
……라는 의미였다.
내 미소에 그의 표정이 잠깐 멍해졌다.
‘아 참, 그러고 보니 그 말을 해야지!’
커피 시음회는 대충 정리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가 내린 커피를 즐겁게 마시고 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테이온에게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맞다. 테이온 공, 조심하세요!”
내 숨결이 귀에 닿자 그의 몸이 눈에 띄게 딱딱하게 굳었다.
……왜 이러지?
잠시 몸을 굳혔던 그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어 물었다.
“……뭘, 말입니까?”
나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수도에서 누군가 당신을 사칭하며 돌아다니고 있어요.”
이 중에도 그 범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칭, 이라면…….”
내 고발을 들은 테이온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 모습에 나는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감히 대공을 사칭하고 다니다니, 간도 크죠?”
“그게…….”
“아주 보통 놈이 아니에요. 사악하고 염치없으며, 양심도 없는 인간 말종!”
커피 시음회를 예견하고, 심지어 자신의 저택에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시설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쩌면 그는 신사업 아이디어를 훔치려는 산업 스파이 같은 걸지도 몰랐다.
나는 테이온의 귓가에 대고 아주 열정적으로 속닥거렸다.
“꼭 범인을 잡아 처단해야 해요! 그런 놈들은 아주 콩밥, 아니 검은 빵을 먹여야…….”
그때였다.
웅성웅성-.
중앙 계단 앞에 있던 귀족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시종의 우렁한 외침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쥴리안 필립 에드워드 크로이튼,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아니, 어떻게…….”
그런데, 그 사이에 낯선 탄식이 섞였다.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카를로타 황비가 외친 소리였다.
“…….”
사람들이 그녀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내자 황비가 호호 웃으며 얼른 덧붙였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에 등장하실까!”
그러자 다른 귀족들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에요!”
“역시 시음회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등장하시려 했던 거군요!”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계단 위로 향했다.
카를로타 황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황태자는 연회장 문이 아닌 발코니에서 연결된 계단으로 내려왔다.
뚜벅, 뚜벅.
하얀 대리석을 밟고 내려오는 눈부신 금발의 남자.
그의 얼굴을 발견한 나는 놀라움에 입을 딱 벌렸다.
‘저 남자는…….’
그는, 바로 그 테이온 대공의 사칭범이었다!
남자 역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놀란 내 얼굴을 본 남자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스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곧 이 대제국의 후계자다운 위엄을 갖춘 얼굴로 계단에서 완전히 내려섰다.
“제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연회장의 모두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누구도 제국의 황태자보다 고개를 높이 들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황급히 따라 허리를 숙인 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 사칭범이, 황태자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