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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며느리 관두고 커피 내립니다 1권
지은이 : 그린글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 그린글, 2025
※ ISBN : 979-11-7313-967-3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6월 17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프롤로그.
“얘, 에일린. 내일이 무슨 날인지는 알고 있겠지?”
시어머니 소피아의 말에 에일린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일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기일이었다.
그녀는 이날이 되면 부모님의 묘지 앞에 꽃을 놓고 오곤 했다.
비록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탓에 시신조차 남지 않아, 묘 아래 자리한 관은 텅 비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역시.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니 드디어 내 마음을 헤아려 주시는구나!’
에일린이 기쁨에 찬 얼굴로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그녀는 언제나 고분고분, 말대꾸 한번 없이 시어머니의 말에 충성하는 착한 며느리였다.
그것이 그녀를 노예 취급 하며 이 큰 저택의 집안일을 모조리 떠맡기거나, 하녀들조차 먹지 않는 남은 음식을 먹으라 종용하는 일일지라도…….
“이 아까운 걸 그럼 남기니? 네가 안 먹으면 이걸 누가 먹는다고!”
……에일린은 늘 기꺼이 시어머니의 말에 따랐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요구하는 일은 단 하나.
바로 일 년에 딱 한 번, 부모님의 기일을 챙기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소피아는 매년 부모님의 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그녀에게 일을 시켜 먹지 못해 안달했다.
‘하지만, 드디어 어머님께서도 바뀌시는 거야……!’
역시 진심은 언젠간 통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기뻐했던 것도 잠시.
“그래. 내일은 내가 주최하는 티 파티가 열리는 날이다.”
이어진 시모의 말에 에일린이 눈을 크게 뜨고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피아는 시치미를 뚝 떼며 명령했다.
“그러니 네가 새벽 시장에 나가 싱싱한 꽃을 좀 구해와라.”
“하지만, 어머니…….”
“물론 전날 사놓을 수야 있겠지만 아무래도 막 사 온 꽃이 싱싱하고 예쁘지 않겠니. 그리고 당연히 우리 집안의 큰며느리인 너도 티 파티 자리에 있어야겠지?”
“어머니. 잠시, 잠시만요…….”
에일린은 언제나 순종적으로 ‘네.’ 혹은 ‘네, 어머님.’이라고 대답해 왔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어머니. 내일은 저희 부모님의…….”
“이게 건방지게 어디 시어미 말에 말대꾸야!”
그러나 용기 내어 꺼낸 말에 돌아오는 것은 채찍을 내려치는 듯한 호통이었다.
에일린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이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에일린. 우리 예쁜 딸. 너는 고귀한 존재야. 언제나 사랑만 받고 살 거야.”
늘 그렇게 말씀하셨던 부모님.
에일린이 간곡한 어조로 더듬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내일은, 아시다시피 저희 부모님의 기일이에요.”
그녀의 부모님은 10년 전,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사고 현장엔 당시 16살이던 에일린도 있었는데, 그녀는 홀로 살아남았다.
비록 사고의 충격으로 1년간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아마 부모님께서 온몸으로 감싸 자신을 살려주신 것이 아닐까.
에일린은 그렇게 추측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큰 화재에서 자신만 살아남았을 리 없었다.
그러니 더욱 부모님의 기일을 챙기고 싶었다.
“부모님 묘 앞에 꽃 한 송이는 놓아드리고 싶어요.”
용기 내어 어렵게 꺼낸 말에, 시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여자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인 것도 모르니?! 네 어미 아비가 죽은 게 우리 집안이랑 무슨 상관이야!”
“…….”
“혼전 임신으로 우리 아들 신세를 망쳐놓고! 어딜 감히 부모 기일을 챙기겠다고 유세야!”
그 뒤로도 한동안 마음을 할퀴어대는 못난 말들이 쏟아졌다.
너 때문에 내 아들이 망신을 당했다.
혼전 순결도 지키지 못한 이 음탕한 년!
팔자가 사나워 부모를 잡아먹은 고아 년을 우리 같은 명문가에서 받아줬으면 냉큼 알아서 기어야지!
그 모든 모진 말들을 감내하며 에일린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함께 만드는 것이니, 자신이 음탕한 여자라면 시어머니의 그 잘난 아들 역시 음탕한 남자가 되는 거였다.
게다가 그녀는 16살의 기억을 잃어버린 탓에, 지금의 남편을 어떻게 만나 아이까지 낳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10년 전 화재 사고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거리를 떠돌 뻔한 자신을 구해준 게 남편이 아닌가.
그것이 비록 낳은 기억조차 없는 아이 때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이 모든 수모를 다 감내하며 참아왔는데…….
“하여간 케텔 자작은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건지! 네 부모가 널 그렇게 가르치디?”
돌아가신 부모님을 욕하는 일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희 부모님은 선하고 좋은 분들이셨어요.”
“뭐? 어머 어머, 얘 좀 봐……? 너 지금 내 말에 또 말대꾸하는 거니?”
에일린은 분노와 비참함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
“큰 사업을 하면서도 늘 선행을 베푸셔서, 언제나 이웃들과 평민들의 존경을 받으셨다고요.”
더러운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며, 매일 사치하면서도 기부 한 번 하지 않아 욕을 먹고 있는 당신들과 달리 말이야.
간신히 내뱉은 말에, 에일린의 주먹이 덜덜 떨렸다.
결혼 후 처음으로 하는 반항이었다.
“이, 이게 지금 시어미 무서운 줄도 모르고 눈을 그따위로 뜨고……!”
“어머니! 저는 결혼하고 10년 내내 순종하며 어머니의 말씀은 전부 따랐어요!”
에일린이 울부짖었다.
그간 참아왔던 설움이 갑자기 터져 나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저를 미워하고 뭐라 하시니, 저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에일린!”
“이제 그만 저 좀 며느리로 인정해주세요!”
“이 못난 년! 내 아들 신세 말아먹은 년이 어디서!”
잔뜩 흥분한 소피아가 주변을 살피더니, 옆에 있던 커다란 꽃병을 손에 쥐었다.
그러곤 에일린의 머리 위로 그것을 확! 내리쳤다.
“어머니, 전……. 아악!”
흥분해 아무 데나 때린다는 것이, 하필 머리에 명중했다.
털썩.
에일린의 가녀린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소피아가 연신 소리쳤다.
“어딜 감히 시어미한테 대들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내가 오늘 아주 너를 가만두지 않을…….”
그러다 소피아가 점점 뒷말을 흐렸다.
이상했다.
바닥에 쓰러진 에일린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얘. 그런다고 내가 속을 줄 아니? 아픈 척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 헉!”
소피아가 다급하게 숨을 삼켰다.
쓰러진 에일린의 머리에서 새어 나온 시뻘건 피가 웅덩이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고, 이 재앙 덩어리를 왜 우리 집에 들여서!”
쓰러진 며느리를 보고도 소피아는 그저 남 탓을 하기 바빴다.
“의사를……. 아니. 아니지.”
며느리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데도 소피아는 재빨리 머리부터 굴렸다.
“시내의 의사를 부르면 사교계에 소문이 날 거야. 이 계집애가 내가 때린 거라고 입이라도 잘못 놀리면…….”
물론 그렇다고 해도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여성의 인권이 낮은 이 제국에선 결혼한 여자에 대한 모든 권리가 시가에 복속되니까.
하나 그렇다 해도 사교계에선 평판이 안 좋아진다.
“안 그래도 근본 없는 백작 가문이라고 욕먹는데……. 하여간 진짜 이 계집애는 도움이 안 돼!”
신경질적으로 욕을 하던 소피아가 결국 의사 대신 하녀를 불렀다.
“얘, 엠마!”
“네, 마님……. 헉!”
그녀의 부름에 문을 열고 들어온 하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에일린을 보고 숨을 삼켰다.
그런 하녀를 향해 소피아가 냉정하게 명령했다.
“핏자국 안 남게 닦고, 화병 조각도 전부 치워.”
“네, 마님.”
곧장 대답한 하녀가 에일린을 힐끗 보며 덧붙여 물었다.
“작은 마님은 어떻게 할까요?”
“하아, 내가 정말 골치 아파서……. 대충 네가 처리해. 흉은 안 남게 하고.”
이 저택 집안일의 전권은 소피아에게 있었다.
그런 그녀가 며느리를 저토록 무시하고 괴롭히니, 하녀들조차 에일린을 괄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소피아가 은화를 던지며 낮게 읊조렸다.
냉큼 두 손으로 그 은화를 받은 엠마가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그럼요. 마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1. 아줌마가 내 시모라고?
나는 바리스타였다.
그리고, 죽었다.
……아마도?
“으윽…….”
나는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을 느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