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이 중요한 걸 빼놓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마치 소풍날 도시락을 깜빡한 자식을 쫓아가는 부모들의 모습 같았다.

“…왜 또 쫓아왔어?”
“누, 누가 쫓아왔다고 그럽니까. 어둠의 숲에 간다고 하니 이게 필요할 것 같아 전해 주러 온 것뿐입니다. 어쨌든 제가 드린 선물이니까….”

내가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자, 크리우스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흠흠. 필요 없으면 다시 가져가겠습니다.”
“아니, 고마워.”

나는 자연스럽게 데스 사이드를 건네받았다.
사실, 지난번 아돌프에게 간략한 전투 기술을 배웠다.
악령의 몸은 인간과 달랐다. 그래서 체력도 힘도 무기를 다루는 방식도 모든 게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지만, 기본적인 자세와 파지법, 그리고 목표물을 정확히 베는 법을 조금이나마 익혔다.

“…연습해도 실전에 써먹지를 못하면 아까우니까.”
“예? 설마 훈련을 하신 겁니까?”

크리우스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훈련까지는 아니고 그냥 기본적인 것만 아돌프한테서 배웠어.”
“아, 그렇습니까. 뭐… 저도 남는 게 시간인지라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됩니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날 대했었는데,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오늘따라 원래의 익숙한 크리우스 하퍼로 돌아온 것 같다.

“그건 됐고. 이제 좀 원래대로 돌아왔네. 최근에 너 너무 진지해진 거 알아?”
“…….”
“네가 아무리 나한테 반했다 치더라도, 너무 과했다고.”
“제, 제가 왜 당신한테 반한단 말입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풉.”

괜히 발끈하는 게 조금 웃긴 탓에 혼자 큭큭거렸더니, 크리우스가 어느새 넋을 놓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며 모인 멤버들을 훑어보았다.

“뭐, 아무튼. 이렇게 팀이 최종 결성된 건가?”

하벨, 에반, 릴리스, 아론, 크리우스, 나. 이렇게였다.

“크리우스. 설마 너도 따라오려는 건 아니겠지?”
“위험한 어둠의 숲에 따라가고 싶지는 않지만…. 기왕 이렇게 온 거 뭐, 같이 갑시다.”

크리우스가 선심 쓰듯 말했다.

‘거짓말. 애초에 같이 가려고 온 거면서.’

“여섯 명이라. 의외로 인원이 너무 많아졌는데….”
“유령 악령 빼고 세어야 해. 안 많다. 네 명이다.”

어느새 하벨이 끼어들었다.

“너 자꾸 내 말에 딴지 걸래?”

내가 타박하자 하벨은 모른 척하며 주머니에 넣어 둔 비상식량을 꺼내 먹었다.
출발부터 어수선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 멤버로 어둠의 숲 돌파를 시작하게 되었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채,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 * *

바실레온은 계속해서 환영 속에 갇히고 풀려나기를 반복했다.
환영 속에서 마주하는 건 늘 누이와 아버지였다.
그들은 바실레온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죽였다.
하지만 되살아난 바실레온은 언제나 평온했다.

“대체 왜.”

체라는 바실레온의 멱살을 잡았다.

“어떻게 그런 가증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거지?”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정신이 무너져 미쳐 버릴 것이다.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고통 속에서 끝없는 죽음을 반복하는 건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벌써 몇백 번이나 죽었으면서.”

쾅-.
체라는 다시 한번 바실레온을 벽으로 내던졌다. 순전히 화풀이였다.

“그딴 초연한 눈 집어치워. 보기 싫으니까.”

수없이 반복된 죽음조차 바실레온의 정신을 다시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환영 속의 체라는 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한동안 화를 삭이며 깊이 생각하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내 손아귀에 들어올 인간들이 더 많아질 테니까.”

어떤 폭력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바실레온이 그제야 체라를 쳐다봤다.

“어떻게.”
“이제 좀 관심이 생겼나?”

체라가 허공에 손을 한 번 휘젓자, 바실레온의 눈앞에 이비엔이 보였다.

“……!”

이비엔뿐만 아니라 크리우스와 다수의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저 대머리 인간 알지? 네가 항상 첫 번째로 죽여 왔던 그 인간 말이야.”

체라는 아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인간이 바깥으로 나가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어. 결과적으로 나는 미약한 힘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고, 인간들을 끌어들일 방법을 찾아냈지.”

그들은 분명 어둠의 숲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또 어둠의 숲인가.”
“어둠의 숲은 더없이 적합한 장소야. 인간은 공포에 잠식될수록 정신이 약해지지. 그 틈을 타 혼란을 일으키면 그때부터는 쉬운 법이야.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니.”

체라가 손짓하자 바실레온의 시야에 파란 머리의 생존자가 비쳤다.
파란 머리를 땋아 길게 늘어뜨린 생존자는 메리 크로우였다. 그녀는 어둠의 숲 바깥에서 불안한 듯 입술을 자꾸 깨물고 있었다.

“저렇게 말이야.”

메리의 주변은 고요하고 어두웠지만, 분명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무서운 것이 주변에 있는 듯 계속해서 주위를 힐끔거렸다. 그리고 불안한 기색으로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불안감을 떨쳐 낼 수는 없었는지, 메리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서워…. 에반… 릴리스….”

메리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자, 바실레온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직 저 인간 하나뿐이지만, 곧 저 녀석을 이용해 더 많은 인간을 끌어들일 거야. 소수가 다수가 되면, 그만큼 설득도 쉬워지니까.”
“…가만히 있지도 못할 정도로 불안감에 떠는 인간을 어떻게 이용한다는 거지?”
“어떻게 되는지는 네 눈으로 직접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