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재벌이 대통령을 잘함 06권
전직 재벌이 대통령을 잘함 06권
전직 재벌이 대통령을 잘함
06
시크릿K
전직 재벌이 대통령을 잘함 06권
차례
Chapter 01. 일본과 기 싸움 - 2
Chapter 02. 바쁜 대통령
Chapter 03. 압박과 합의
Chapter 04. 폭풍 전야
Chapter 05. 언론 개혁
Chapter 06. 대중 외교
Chapter 07. 대통령과 대화
전직 재벌이 대통령을 잘함 06권
Chapter 01. 일본과 기 싸움 - 2
가시다 총리와 독대하는 자리.
민감한 내용을 다뤄야 해서 배석자를 두지 않았다. 내가 일본어를 하기에 통역사도 제외했다.
가시다가 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일본어는 언제 배우셨습니까? 언론과 인터뷰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5년 정도 공부했습니다. 처음 일본어책을 본 건 10년 전이죠.”
“공부를 오래 하셨군요.”
아베 피격 사건 이후로 지지율이 추락하는 가시다 역시 한국과의 관계에서 지지율을 회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정중하게 말했다.
“한국 국민도 많이 화가 난 상태라 대통령으로서 말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통령님께서 경솔하신 것 같습니다. 회의에 주제와 전혀 관련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시다의 볼이 실룩거리는 걸 봐서는 감정이 상한 모양이다.
“저는 양국이 신뢰하지 못하면 서로 칼을 숨기고 동행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하죠.”
“이미 과거사 처리는 끝났습니다. 1965년에 체결한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 등 5개 부속 협정을 아셔야 합니다. 당시 식민 지배 시기에 체결된 조약 및 협정을 무효로 하고 한국에 돈도 지원했습니다. 2015년에 위안부 합의도 하지 않았습니까?”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은 부정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배상까지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했다는 주장은 논리에 모순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도 지원한 돈이 경제 협력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제 동원 문제 해결 보상금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불법적 관계에서 발생한 청구권은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강제 동원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했다.
가시다는 과거에 해결됐으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미 실무진에서 논의했고,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의사를 확인했다.
“총리님의 생각은 확고하시군요. 그렇다면 저도 협조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등록을 결사적으로 막겠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의 해양 방류는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이건 PIF(태평양 도서국 포럼)과도 보조를 맞출 것입니다.”
가시다는 당황했다.
“외교를 너무 감정적으로 하시는 것 아닙니까? 한국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또 어떻습니까? 3개국이 힘을 합치면 한국은 화약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 발사로 도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과 힘을 합쳐 대비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나는 허리를 살짝 뒤로 젖혔다. 급한 건 내가 아니라는 제스처다.
“과거사에 대해서는 우리도 많이 노력했습니다. 사과도 몇 차례나 하지 않았습니까?”
“사과하고 바로 망언이 이어졌죠. 그리고 총리님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망언을 방관하고 있죠.”
나는 그가 말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총리님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저는 그냥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러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미한 3국 관계가 삐걱거리면 안보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한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총리님, 저는 한미일 3국 관계는 유지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전 정부에서 금기시됐던 군사훈련도 같이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얘기입니다.”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하신다면 한국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가시다의 표정은 다급했다.
최근 한국의 교수들이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사도 광산 등재 반대를 담은 서한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총리님, 제가 바보는 아닙니다.”
가시다는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깜박였다.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하시마(군함도) 있지 않습니까?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서 유네스코로부터 경고를 받은 거로 알고 있는데, 저희가 또 당하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멍청이는 아닙니다.”
“그건 사과드립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저는 한국이 요구하는 걸 다 수용하겠습니다. 조선인 강제노역의 역사를 반영한 전시물을 설치하고, 강제노역 피해자를 위로하는 기념비를 세우겠습니다.”
“먼저 세우시죠. 그리고 보상도 하시고요. 그렇다면 긍정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가시다는 화를 참으려고 했으나 그의 눈썹이 자꾸 꿈틀댔다.
“미국은 우리가 마찰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총리님.”
나는 상체를 앞세워 가시다를 노려봤다.
그가 움찔했다.
“총리님은 주체적으로 해결하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꼭 미국을 끼워 넣어야 합니까? 그렇다면 제가 바이덴 대통령과 의논하고 통보해드리죠.”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가시다는 나를 그런 표정으로 바라봤다.
* * *
연화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 뉴스를 봤다.
앵커는 가시다가 상기된 얼굴로 회담장을 빠져나오는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일본 현지 언론에 보도된 사진입니다. 강 대통령과 회담 후 가시다 총리의 무척 화난 얼굴이 찍혔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앵커의 말을 들은 일본 대사 출신 교수가 답했다.
“대통령님께서 이미 재일동포 만찬에서 일본의 망언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마 그 연장선상에서 대화가 오갔을 거로 예상합니다.”
“APEC 의제보다는 과거사에 집중했을까요?”
“APEC 공동 선언이 나왔으니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양국 간 협의 사항이 있었을 텐데, 그건 제동이 걸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향후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외교는 샅바 싸움이 중요합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연화 옆에서 TV를 보던 탁민우가 무릎을 쳤다.
“형님은 무조건 직진이네.”
“외교에서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결과적으로 정상끼리 싸움한 셈이 됐잖아.”
“일방적으로 두드려 팬 거잖아. 나는 속이 시원하다.”
TV에서는 밝은 모습으로 나오는 강천명의 사진이 나왔다.
앵커가 말했다.
“우리 대통령은 밝은 모습으로 회담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분위기로 봐서는 대통령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대통령님께서 후쿠시마 방류 문제를 항의하셨을 것 같고, 일본은 지소미아(한일군사보호협정) 재개를 요청했을 겁니다.”
“곧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도 시작됩니다. 영향이 없을까요?”
“미국이 중재에 나설 것입니다. 바이덴이 중간평가를 앞두고 있어 적극적으로 한일 관계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큽니다.”
쨍그랑―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화는 재빨리 주방을 바라봤다.
그녀의 엄마가 깜짝 놀라 당황하고 있었다.
“엄마, 가만히 있어.”
탁민우도 벌떡 일어나서 주방으로 다가갔다.
“장모님, 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치울게요.”
“엄마, 뭐 하려고 그랬어?”
“애들 과일이라도 먹이려고 했지. 손이 미끄러졌어.”
“과일? 애들?”
연화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수박 먹였잖아. 그리고 애들은 놀이터에 가서 논다고 나갔어. 아까 엄마한테 말했잖아.”
“그러니?”
연화는 당황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걱정했다.
“정말 기억이 안 나?”
“내가 잠시 다른 생각 하느라 깜빡했네.”
“정말 괜찮은 거야? 접시를 깨지도 않던 사람이 왜 그래? 손에 힘이 없어?”
“아니야. 뉴스를 들으니까 걱정돼서 정신이 팔렸어.”
“그래?”
“뉴스에서 또 얼마나 비난할지 걱정돼서 정신이 없다.”
탁민우가 나섰다.
“장모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언론과 야당 모두 일본에 저자세라고 얼마나 씹었는데요. 이젠 아무 말 못 할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연화는 엄마를 유심히 관찰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두 가지 실수. 나이가 들면서 건망증이 생기고 힘이 빠진 것일까?
걱정된다.
* * *
한국통합당 당사 당 대표실.
당 대표 추영호와 원내대표, 서인하 수석 대변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추영호가 입매를 비틀었다.
원내대표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저놈은 괴물이야. 어떻게 외교에서 저런 짓을 하고 다녀!”
“그러니까 말입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언행을 하고 다닙니다. 이러면 일본과 관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내대표의 말에 이어 서인하가 말했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 국민은 우호적인 감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일본 문화 개방으로 한국이 문화 강국이 됐다는 립서비스도 하고요.”
“여우 같은 놈이야. 일본 국민에게 자국 총리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으니까.”
“대표님, 우리가 궁색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장중하 주필이랑 통화했어?”
“그쪽도 충격을 받아서 멍한 상태입니다.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한다고 너무 많이 비판한 터라 깔 처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추영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은 후에 서인하를 봤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
“지금은 뚜렷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일본에 큰 소리를 내라고 논평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으니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서 의원은 강천명을 잘 알잖아. 이럴 걸 예상 못 했어?”
“어렸을 때는 모범생 스타일이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무슨 말이야?”
원내대표가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저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다고 생각했죠.”
“그 이후에는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