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 대공의 연애 스승이 되었다 3권
모태솔로 대공의 연애 스승이 되었다 3권
모태솔로 대공의 연애 스승이 되었다
3
서뉴
모태솔로 대공의 연애 스승이 되었다 3권
차례
001
002
003
004
005
006
모태솔로 대공의 연애 스승이 되었다 3권
001
세이온은 아네트가 자신을 그토록 미워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첫 번째 생에서는 지은 죄가 명백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아니었다. 제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그녀는 도망치고 싶어 안달이었다.
언젠가부터 세이온은 여신의 미움이 그녀에게 옮겨 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녀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여신의 개입일 뿐이었다면 마음이 편할 텐데.
「사, 살려 주세요…….」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올 때도, 무자비하게 매질을 당할 때도 하지 않던 말이 세이온 앞에서 흘러나왔다.
세이온은 고개를 돌렸다. 이미 뇌리에 각인된 장면은 더 보지 않아도 되었다. 외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엘이 나타나 그녀를 안정시키고, 뒤늦게 돌아온 사람들이 자신을 포박할 터였다. 마녀라 부르던 아네트는 뒷전으로 제쳐두고 새로이 나타난 악마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몇 번이고 반복된 죽음에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아네트를 대신해 죽는다는 사실이 새삼 서러운 것도 아니었다. 다만…….
「괜찮습니다. 이제 다 끝났어요.」
두려움에 찬 눈으로 자신을 외면하며, 리엘의 품에서 안정을 찾는 아네트의 모습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가슴에 내리꽂혔다. 영생처럼 환생을 반복했지만, 진정한 죽음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일 터였다.
“왜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심연으로 가라앉으려던 세이온을 건져 올렸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 듯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두 팔을 뻗은 세이온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부드러운 옷자락이 손끝에 스쳤다.
“아니, 저런 못된 것들이!”
온기를 찾아 허공을 더듬으며 세이온이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제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듯 보이지 않는 아네트는 성질을 부리느라 바빴다.
익숙한 소음 속에서 세이온은 아네트의 기척을 찾는 데 집중했다.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차오른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덕분에 기척을 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왜 가만히 있냐고요! 전하 바보예요?! 아까는 잘 싸우더니, 지금은 왜 얌전한 건데!”
찾았다. 세이온은 손에 잡힌 천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품으로 온기가 쏟아져 내렸다.
“뭐야!”
익숙한 체취가 세이온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저 멀리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와 차원이 다른 달큼한 향이었다.
고개를 숙인 세이온이 아네트에게로 입술을 묻었다. 입술로 부드러운 온기가 닿고, 아네트의 몸이 바르작거렸다. 그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아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 또한 제 존재가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제가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처럼, 아네트 또한 그랬다.
“세이온?”
자신을 확인하려는 부름에 세이온이 그녀의 몸을 더 깊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어색해하는 것 같던 아네트가 세이온의 팔을 느리게 토닥였다.
불길이 커질수록 장면이 흐릿하게 바뀌었다. 그다음 생으로 넘어가려는 듯 주변이 까맣게 물들었다.
세이온은 고요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가 아네트와 함께한 생은 일곱 번째가 끝이었다.
그다음부터는 그녀를 찾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려 했다. 그것은 굳이 지금의 아네트가 볼 이유도, 필요도 없는 삶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여신은 잔인했다. 기어이 아네트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려는 듯, 깜깜하던 주변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네트, 눈 감으세요.”
세이온은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삭였다. 그녀가 제 추잡한 과거를 보지 않기를 바랐다.
더듬더듬 손을 올려 아네트의 얼굴이 있을 곳을 덮었다. 아네트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그녀의 속눈썹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아네트의 시야를 가리고 나서야 전생의 자신을 살필 수 있었다. 일곱 번째까지의 생과 달리 다른 두 전생은 그도 꿈에서조차 본 적이 없었다.
피곤한 낯의 세이온은 한껏 흐트러진 차림으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손에 쥔 단검을 장난감처럼 던졌다가 다시 받는 모습이 위태로웠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던 세이온이 아네트의 몸을 더 세게 껴안았다. 시야를 가린 손에 힘이 들어가자, 아네트가 제 손목을 더듬었다. 그녀가 손을 잡아 내리기라도 할까, 세이온이 손목에 힘을 주고 버텼다.
침대 위에 누운 세이온이 단검을 검집에서 뽑아 들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예리하게 반짝였다.
까득, 세이온이 이를 갈았다. 제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던 여신은 기어코 다시 아네트를 앗아가려 했다.
“전하. 안 볼게요.”
불안정한 세이온의 감정을 느낀 아네트가 달래듯 속삭였다. 그의 손바닥을 간지럽히던 속눈썹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뜻대로 눈을 감아 준 모양이었다.
세이온이 기나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잔혹한 소음이 자잘하게 울리고, 누군가의 발소리와 비명이 울렸다. 여덟 번째 죽음이었다.
눈앞의 장면이 허물어지고 있음에도 세이온은 아네트를 더 옭아매듯 품에 안았다. 시야를 막은 손도 내리지 않았다. 아직 남은 아홉 번째 죽음이 끝날 때까지는, 놓아줄 수 없었다.
아네트를 잃은 세이온은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가 살린 목숨이었으니, 버려졌다면 살아 있을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삶에서 보여 줄 것은 고작 한 장면이 끝이었다. 지루한 삶의 끝에 남은 죽음은 허망했고, 동시에 비참했다.
모든 삶을 보여 준 공간은 역할을 다했다는 듯 무너졌다. 품 안의 온기도 점차 옅어져 세이온은 허전함에 주먹을 꽉 쥐어야만 했다.
『아직도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나요?』
그러나 사라진 체온에 아쉬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허공을 울리자 세이온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제 뜻을 꺾고자 이런 일을 벌인 것이 퍽 여신다웠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전 당신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는데.』
“그 기회를 제가 어떻게 이용할지, 당신은 모르지 않았겠죠.”
확신 어린 말에도 여신은 답하지 않았다. 세이온은 그녀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이번 생에도 아네트가 전생과 달라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제가 살아 있었을까. 고집스러운 세이온은 제 목숨을 던져 여신을 도발했다.
많은 기회를, 오랜 삶을 불어넣어도 몇 번이고 끊어내리라. 제 죽음은 곧 그녀가 준 기회가 아닌 형벌에 불과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세이온을 스쳐 지났다. 여신이 내쉰 한숨이었다.
『아네트의 표정을 보지 못했으니,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죠.』
그 말에 세이온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몇 번의 생에 걸쳐 집착하다가 스스로 목숨까지 내던진 자신을, 아네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상되지 않았다.
‘집착 금지!’
아네트의 청명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우연처럼 나타난 그녀가 제게 처음 가르친 것 중 하나였다.
『당신이 오랜 시간 동안 벌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이번 생을 준 거예요.』
여신이 자애롭게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세이온에게는 다정하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이번 생의 아네트에게는 어떤 뜻도 불어넣지 않았으니, 오해 말아요.』
“…….”
『모든 관계는 당신이 만들어 낸 결과니까.』
여신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세이온만이, 꿈에서 깨는 내내 생각을 정리할 뿐이었다.
이번 생의 결과도 오롯이 제가 홀로 감당하도록 던지는 것마저 여신다웠다.
분명 아네트를 끌어안고 잤음에도 품이 허전했다. 번뜩 눈을 뜬 그가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분명 아네트가 곁에서 자고 있을 것이란 생각과 달리, 침대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세이온이 허전한 이불 속을 손으로 훑었다. 손에 닿았다고 생각만 하면 아네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어졌다. 그 점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꽉 깨문 그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분명 아네트도 저와 같은 장면을 봤을 터였다. 그로 인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알 수 없었다. 다정한 평소의 아네트라면 동정심을 품었을지도 모르지만, 전생을 떠올린 그녀는 예측되지 않았다.
어쩌면 리엘의 안온하던 품을 떠올리고 그에게 가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세이온이 제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갖고 싶은 관계는 딱 하나였는데, 그게 어렵네.”
모든 것은 제가 만들어 낸 결과라던 여신의 말이, 속을 잔뜩 헤집었다.
야속하게도.
* * *
흐린 시야가 선명해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또 꿈속이었다.
기절시킨 후에 전생 보여 주기.
이제는 익숙해진 전개가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에도 적응이 빨랐다. 다수의 경험 덕이었다.
「세이온 페르난디가 대신관님을 해치려 했습니다.」
세이온의 이름이 들려와 미간을 찡그렸다. 그의 상처를 지혈하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숨이 차다 싶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은 듯했다.
상처는 제대로 치료받았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누군가 어린 세이온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얼마나 힘을 준 것인지 그의 고개가 크게 돌아가며 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네놈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었어! 어떻게 감히 대신관님께 성녀님을 팔기 위해 입양했냐는 말을 하는 것이냐!」
고함에 뒷걸음질 친 나와 달리 세이온은 담담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감히 성녀인 아네트에게 후계를 강요하는 건 옳은 일입니까?」
감정이 온도로 나타났다면 이곳은 불가마가 되고도 남을 것 같다. 바들바들 떨며 화를 주체하지 못한 대공이 다시금 세이온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저러다 턱뼈가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힘이었다.
성녀 아네트는 천애 고아였다. 대신관은 신탁에 따라 그녀를 찾아 데려왔고,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가문에 입적시켰다.
그 과정이 순수한 호의였을지 성녀와 얽히기 위한 계략이었을지는 대신관 본인만 알 터였다.
「우리 가문에 저주가 내리면 그건 다 네 놈 때문이니, 책임지고 혼자 짊어져야 할 게다.」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대공이 문을 거칠게 닫으며 나갔다. 세이온과 달리 그는 퍽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홀로 남겨진 세이온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발뒤꿈치를 들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에게 나는 없는 존재일 테지만 조심해야 할 것만 같았다.
“전하, 왜 맞고만 있어요? 저한테는 말대꾸 꼬박꼬박하더니. 불속성 불효자 해야죠!”
들리지도 않을 말을 속삭이며 터진 그의 입가를 닦아 주려 했다. 그러나 어림없다는 듯 손은 그를 스쳐 지났다. 마치 내가 유령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창문 밖을 살벌하게 응시하던 그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는 확고한 결심을 품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오늘이 성녀를 납치하기로 결심한 날이라고.
기도실에서 세이온과 여신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여신은 내가 의문을 품었던 것을 모두 다 보여 줄 심산이었다.
예상한 대로 알고 있던 장면들이 지나 성녀로서의 아네트가, 또 세이온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다음 생으로 이어졌다.
모든 삶은 세이온의 죽음을 기점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꿈은 그에게 초점을 맞춘 모양이었다.
여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여전히 추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세이온에게 가지는 연민이나 동정 따위는 아닐 터였다.
리엘의 손에 세이온이 여섯 번째 죽음을 맞이하자 속이 갑갑해졌다. 다음 생으로 넘어가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세이온은 가장 큰 악당 역할인 척하면서, 알고 보면 제일 약한 인물이었다.
“뭐 맨날 당하기만 하냐, 이렇게! 허우대는 멀쩡해 가지고!”
소리를 질러도 그에게 들리지 않으니 답답함은 쌓이기만 했다. 그의 넓은 어깨를 주먹으로 쳐 보기도 하고, 탄탄한 가슴 근육을 찰싹 때리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네트의 앞에만 서면 세이온은 하염없이 무너졌다.
다른 여섯 번의 생과 달리 일곱 번째 인생은 유독 힘들었다. 가뭄에 목이 마른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킨 탓이었다.
높지 않은 신분의 리엘과 아네트는 폭동에 이리저리 휘말렸다. 사람들은 말라 갔고 일상은 피폐했다.
솔직히 마녀로 몰린 아네트가 제물로 단상에 올랐을 때, 리엘이 당장 구하러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구한 것은 세이온이었고, 리엘은 예의 부드러운 어투로 놀란 아네트를 달래기만 했다. 험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때부터는 다른 것보다 전생의 아네트가 얄밉게 보였다. 은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다니, 그 싸가지는 어디서 배워 먹은 거야.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세이온이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는 눈빛이 불쾌했다. 이 몸의 전생이었음에도 그랬다. 저 버르장머리를 당장이라도 고쳐 주지 못하면, 속에서 끓어오른 천불로 내가 먼저 죽을 게 분명했다.
닿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저들의 머리를 대머리로 만들어야겠어. 결심이 서자마자 몸이 튀어 나가려 했다.
뒤에서 무언가 나를 잡아채지만 않았어도, 이 상황이 끝날 때까지 저 난동에 섞여 있었을 터였다.
“뭐야!”
처음에는 여신이 나를 말리려는 수작인 줄 알았다. 그러나 형태가 보이지 않는 온기가 온몸을 감싸 안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더군다나 코끝에 닿은 향은 익숙한 이의 것이었다.
세이온. 그가 나와 같은 장면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이성이 차갑게 식었다. 모든 걸 기억하는 그는 눈앞의 상황 또한 익숙할 터였다.
아네트 대신 단상에 오른 그를 쳐다보았다. 곧 그의 일곱 번째 죽음을 끝으로 이번 생이 끝났다.
입술을 꽉 깨문 채 세이온의 온기가 닿은 곳을 문질렀다. 어떤 말도 그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고, 그 생각은 다음 생을 본 순간 확신이 되었다.
“흐업…….”
총 아홉 번의 전생을 모두 보고 눈을 떴을 때, 가장 처음 보인 것은 세이온의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던 비명을 힘겹게 삼켰다. 하마터면 그의 얼굴에 대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다행히 곤히 잠든 듯 세이온은 큰 미동을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콕 찔렀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촉감과 그의 따뜻한 체온이 현실 감각을 일깨웠다.
그와 마주 누운 채 잠든 얼굴을 감상했다. 전생의 그는 매일 세상 무관심하거나 암울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잠들어서인지 지금의 그는 제법 평온해 보였다.
손가락으로 그의 얼마 없는 볼살을 누르다 손바닥으로 그의 눈가를 가렸다. 조금 전, 꿈속의 그가 했던 것처럼.
“이제부터 나쁜 생각은 금지예요.”
세이온의 뜻대로 극단적인 장면을 보지는 않았지만, 들은 것만으로 그의 선택을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내려 내 허리 위로 올라온 그의 팔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치료를 받기는 했는지, 하얀 천이 꽤 두껍게 묶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