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캐릭터가 엔딩을 기억한다 3권
남자 캐릭터가 엔딩을 기억한다 3권
남자 캐릭터가 엔딩을 기억한다
3
하나영
남자 캐릭터가 엔딩을 기억한다 3권
차례
빙의 여주라면 사업을 하는 게 인지상정
집착 남주는 납치 감금이 필수코스
반란군의 정체(1)
반란군의 정체(2)
남자 캐릭터가 엔딩을 기억한다 3권
빙의 여주라면 사업을 하는 게 인지상정
“고기 사 준다니까 그러네.”
리븐이 떠나기 전, 그래도 먼 길 떠나는데 맛있는 거라도 사 주고 싶은 마음에 오웬과 리븐을 데리고 캣츠에 왔다.
굳이 고기를 사 준다고 하는데도 레몬 디저트면 충분하다고 하는 리븐. 정말, 이 세계 남자들은 레몬 디저트를 왜 이리 좋아하는 거람. 물론 나야 덕분에 좋지만.
“나 고기 별로 안 좋아해.”
생긴 건 고기를 뼈째 뜯어 먹게 생겼는데, 그의 손에는 너무나 앙증맞은 찻잔이 들려 있었다.
“이제 내려가면 한동안 못 보겠지?”
“러비앤은 수도에서 너무 머니까. 그래도 내가 자주 놀러 가 볼게!”
에스테반의 도움이면 러비앤까지 금방 갈 수 있으니까, 여름에 놀러 가면 너무 좋겠다! 어차피 거기에 내 집도 있으니까 올여름 피서는 러비앤으로 가자고 에스테반한테 이야기해야지.
“응, 꼭 자주 놀러 와야 해.”
리븐이 내 손을 잡고 ‘꼭’을 강조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내 손을 꽉 쥐고 있던 축축한 손이 내게서 떨어졌다. 오웬이 리븐의 손을 잡고 떼어 낸 거였다.
“손은 놓고 이야기하시죠.”
아, 맞아. 생각해 보니까 오웬이랑 연인이 됐으니 이런 오해할 만한 상황은 조심하는 게 좋지.
언제 나타난 건지, 우리 셋 사이에 어느새 에스테반이 자연스럽게 나타나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오웬 경은 요즘 할 일이 없나 봅니다? 이렇게 자주 나타나시는 걸 보니 말이죠.”
“다행히도 평화롭군요.”
“그 평화가 오래 가야 할 텐데 말이죠.”
훈훈한 덕담을 나누는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어깨에 작은 온기가 닿았다.
“브릴린? 세상에, 진짜 브릴린이 있잖아?”
“어머! 벨!”
너무 오랜만에 보는 얼굴. 에버그린 공작저에서 같이 일했던 하녀 벨이었다. 양손에 가득 봉투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심부름이라도 나온 모양이다.
“다들 네 걱정 많이 했어. 어떻게 편지 한 통 안 쓰고 사라질 수가 있어?”
“그게…… 미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엘라 말고도 저택에서 다들 나를 걱정했구나. 하긴 집사장님도, 하녀장님도 모두 내게 따스하게 대해 주신 분들이니까.
“안 그래도 엘라 공녀님이 네가 여기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벨은 두 팔 가득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주머니에서 뭔가 꺼냈다.
“이게 뭐야?”
“엘라 공녀님이 드디어 성년이 되시고, 공작님이 되시거든!”
아,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일로 황궁에 왔었지?
“그래서 공녀님께서 이걸 너한테 주라고 하셨어.”
나는 받은 봉투를 조심히 펼쳐 보았다. 초대장이잖아?
“공녀님의 작위 수여 파티 초대장이야. 파트너 동반이니까, 여기 같이 앉아 있는 분들 데리고 와도 괜찮고!”
“오, 파트너 동반이야?”
엘라의 성년식, 가고 싶다! 우리 엘라는 또 얼마나 예쁠까. 무슨 색 드레스를 입으려나? 하아, 근데 이번에는 정말 운영자한테 들키지 않을까?
“브릴린, 갈 거야?”
“브릴린, 갈 겁니까?”
그때 오웬과 리븐, 둘이 동시에 내게 질문을 던졌다. 뭐야, 왜 이래.
“으음…….”
나는 초대장을 빤히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
가야겠지? 나한테 너무 잘해 준 엘라인데, 안 가면 엄청나게 섭섭해하겠지? 운영자한테는 어찌어찌 안 들키면 되지 않을까?
“가죠, 뭐!”
“그럼 당연히 저랑 가야죠. 어차피 이분은 곧 러비앤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오웬이랑요?”
뭐, 역시 그래야겠지? 연인이기도 하고.
“잠깐! 잠깐만!”
타이밍 좋게 칼릭스도 끼어들었다. 그는 늘 단정한 차림새였는데 급하게 뛰어온 건지 머리가 바람에 날린 상태였고, 셔츠의 크라바크도 풀려 있었다.
“그, 그 연회 나랑 가.”
“네?”
“아무리 그래도 엘라의 축하 파티잖아? 엘라가 싫어하는 사람이랑 가는 건, 아니지 않나?”
칼릭스가 오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엘라는 오웬의 신분 때문에 그를 무시했었지.
“그렇게 따지면 나랑 가는 게 맞지 않겠나.”
“전, 전하?”
황태자가 삐딱하게 문에 기댄 채 서 있었다. 리븐은 지난번 그에게 거짓말을 한 게 괜히 찔렸는지 우당탕거리며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그 덩치에 그 밑으로 숨는다고 가려진다 생각하는 건가?
“내 신분이 가장 적합할 거야.”
“전하께서는 약혼녀분이나 챙기시죠.”
칼릭스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약혼녀를 두고 브릴린이랑 파트너라니, 그녀를 가십거리로 씹어 댈 겁니다.”
그건 칼릭스 너도 마찬가지인데. 너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이 날 물어뜯지 않을까?
“브릴린, 그냥 저랑 가죠. 제일 깔끔하네요.”
“무슨 소리. 나랑 같이 가.”
“이것들이! 황태자인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벨은 꽤나 흥미진진한 눈으로 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남자들이 왜 나 하나를 두고 이러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이거 또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저, 저는요.”
내가 살짝 손을 들고 입을 열자 서로를 노려보던 눈이 내게 집중됐다.
“저는 오웬이랑 갈게요.”
오웬은 너무나 기쁜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연인을 선택한 건데 당연하다고 생각해야지, 오웬도 참.
하지만 칼릭스와 테오는 왜 자신이 아니냐는 듯 입을 내밀며 구시렁거렸다. 에휴, 하는 수 없지. 이제 교통정리를 좀 해 보자!
“저 오웬이랑 교제하고 있거든요.”
“…….”
“세상에.”
남자들은 침묵했고 벨은 중얼거렸다.
쨍그랑-.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에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주문한 것 같은 빵이 깨진 유리 파편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멍하니 뭔가 들다 만 것 같은 모양새로 서 있는 에스테반까지.
그나저나 저거 탤런이 아끼던 접시 같은데. 우리 탤런 또 눈물 좀 흘리겠네.
“그게 무슨……. 브릴린, 다시 말해 봐. 아, 그러니까 친구로서 교제를 시작했다는 건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칼릭스였다. 그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안 그래도 풀어 헤쳐져 있던 앞섶을 더욱 풀었다. 아무래도 분노를 식히려는 듯했다.
애써 내게 화를 내지 않으려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오늘 독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더는 내게 구애하지 말고, 제발 엘라에게 관심 좀 가져 줬으면 좋겠으니까.
“그럴 리가요. 진지하게 교제를 시작했다고요. 그러니까, 연인이 됐다는…….”
“그만.”
테오가 비틀거리며 내 말을 잘랐다.
“듣기 싫으니 그만 말해.”
“전하.”
나는 계속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차갑게 식은 눈동자를 보고는 말을 삼켰다. 당장 누군가라도 죽일 것같이 눈이 반짝였다.
테오는 내가 입을 다물자 어깨를 들썩이며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이내 빠르게 가게를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충격이 컸나 보다.
“내가……. 내가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
칼릭스가 중얼거렸다.
“천천히 다가갈 테니 기다려 달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칼릭스의 눈물 삼킨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단호해져야 내가 아닌 엘라를 볼 테니까.
“미안해요.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니까요.”
남들이 들으면 무슨 소리냐고 어리둥절해할지도 모르지만, 기억을 하고 있는 칼릭스는 알아듣겠지. 자신의 해피 엔딩 속 엘라와 지금의 내 마음이 다르다는 걸.
칼릭스는 눈물을 뚝뚝 몇 방울 떨어뜨리더니 홱 하고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으, 마음 아파라. 역시 미남의 눈물은 언제 봐도 슬프구나.
“정말, 정말 그자랑 연인이라고요?”
테오와 칼릭스가 가고 나니 이제는 에스테반이었다. 아니 사장님은 또 왜 이러셔!
“제가 연애하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요……? 아니, 그리고 에스테반은 오웬이 제 최애라는 것도 알고 계셨잖아요!”
계속 사람 헷갈리게 왜 이러시는 거람.
“하, 하하. 하하하하.”
에스테반은 허탈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웃더니 이내 마법으로 사라졌다.
아, 그러고 보니 연회 때 그 검은색 고양이 가면 빌려 달라고 해야 하는데! 음, 모레라고 했으니 천천히 이야기해도 괜찮겠지?
“세상에, 브릴린.”
벨이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얼굴을 들이댔다.
“도대체 언제 소후작님과 전하를 꼬신 거야?!”
“으, 그게 아니라.”
“거기다 오웬 님이랑 열애 중?! 정말이야??”
“으, 응. 어쩌다 보니까.”
이게 ‘어쩌다 보니까’로 함축되는 사건일까. 자세히 물어보면 어쩌나 싶었으나 벨은 시간이 없는지 발만 동동 구를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 더 듣고 싶은데! 실은 지금 급하게 꽃집을 알아봐야 해서 파티 때 자세하게 얘기해 줘, 알겠지?”
“잠깐, 꽃집이라니? 공녀님은 꽃 알레르기가 있으시잖아.”
급하게 가게 문을 열던 벨의 손이 멈추었다.
“응, 실은 그래서 조화 장식을 가득 구매했었거든. 근데 그 조화 장식을 보관하던 창고에 어제 물이 새는 바람에!”
벨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이틀밖에 남지 않아서 이제 와서 새로 조화 장식을 그만큼 만드는 건 무리라지 뭐야. 그래서 공녀님이 알레르기 약을 먹고 생화로 장식하시겠대. 실은 그거 먹어도 재채기는 좀 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지.”
연회, 장식, 조화?
나는 그제서야 테이블 밑에서 기어 나오는 리븐을 바라보았다.
“리븐!”
“악, 깜짝이야! 으, 응?”
이거 잘하면, 대박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자네 나랑 사업 하나 해 보지 않겠나?!”
* * *
“정말 이런 걸로 될까?”
리븐은 한숨을 쉬며 사 온 식물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획기적이지 않아? 수직 정원!”